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아래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고, 군사적으로는 냉전 질서를 통제했으며, 문화적으로는 자유·민주·시장경제라는 이념을 전파했다. 그렇게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 뿌리내리게 됐다. 이 시대를 흔히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제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많은 나라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의심하고, 미국도 더 이상 세계 경찰 역할을 감당하지 않겠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도덕적 정당성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직과 공공성, 자유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로 구축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이제 지도급 인사들의 성적 스캔들, 거짓 선동, 만연한 음모론, 인종차별, 총기규제 실패 등을 통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해방 80년을 맞은 한국 국민은 이런 미국의 변모에 몹시 혼란스러워한다. 80년 전 해방은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이라기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가능했다. 이후 80년간 대한민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경계선인 동시에 최대 수혜국이었다. 미국은 우리에게 군사·경제·문화적으로 동경의 대상이고 기댈 언덕이었다. 그러니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에 한국인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여전히 선의를 가진 민주주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극우주의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된 힘 빠진 사자인가. 시장경제의 공정성을 선도하는 감시자인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을 약탈하는 패권국인가. 우리를 전쟁과 가난에서 구원한 해방자인가, 아니면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며 체제를 지키기 위한 방어선이었나.
한국 기독교인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이는 미국 영광의 동력을 제공하던 복음주의 교회가 미국 몰락의 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따르던 미국 복음주의의 신앙과 신학은 과연 복음 그 자체였는가, 아니면 제국에 힘을 보탠 거짓 예언자였는가.
해방 80년을 맞는 한국인은 지금까지 미국의 질서 속에서 자리를 잡던 의존적 사고방식과 관습으로부터 ‘해방’될 때가 됐다. 그리고 그 해방의 방식과 동력은 제국을 상대화하는 기독교 신앙이 제공한다고 믿는다. 5세기 초 ‘팍스 로마나’가 붕괴하고 있을 때였다. 비기독교인은 로마가 침공당한 걸 기독교인의 탓으로 돌렸고, 기독교인은 기독교 국가 로마의 몰락은 곧 하나님의 패배로 생각하여 낙심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작 ‘하나님의 도성’을 통해 하나님과 땅의 도성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쳤다. 로마 제국이 무너져도 하나님의 도성인 교회에 소망을 두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근원은 성경이다. 제국주의 시대를 살았던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은 당대의 제국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함을 설파하며 이들을 두려워하거나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을 짐승으로 묘사하며 폭력과 거짓의 실체를 폭로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팍스 로마나의 한가운데 오셔서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진정한 팍스(평화)를 선포하셨다.
한국 기독교는 예언자의 눈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의 무대 뒤에서 제국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대한민국에 주신 사명을 찾아야 한다. 제국의 붕괴를 애써 부정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예언자들이 제시한 신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80년 전 해방과 분단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여호와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이사야 40:5)
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