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서구 공연계는 일본의 전위적 현대무용 ‘부토’에 열광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페라 티켓은 구할 수 있어도 부토 공연 티켓은 매진이라 살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부토는 1950년대 말 일본의 무용수 겸 안무가 히지카타 다쓰미(土方巽)가 창시했다. 그는 죽음과 폭력 등 당시 일본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주제를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무대에 구현했다. 무용수의 뒤틀리고 쇠약한 몸, 빡빡 민 머리, 하얗게 칠한 그로테스크한 얼굴 등은 그의 작업을 상징하는 표현 방식이었다. 아름다움과 건강, 젊음을 찬미하는 근대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부토는 낯설고 불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외면받던 부토에 매력을 느낀 것은 서구 공연계였다. 부토의 해외 진출도 프랑스 외교관이 현지에 소개한 덕분에 이뤄졌다. 비록 히지카타는 생전 해외 공연을 못 했지만 1978년 무로부시 코의 파리 공연을 시작으로 제자들이 낭시 연극제, 아비뇽 연극제 등에 잇따라 초청받았다. 1980~90년대 유럽 공연예술축제 프로그램에 부토가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서구 관객들은 부토에서 인간의 육체와 현실 세계를 부정하는 과격한 의지, 죽음을 통한 실존에의 열망을 읽어냈다.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고 부토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등장했다. 예기치 못한 인기에 일본 정부도 뒤늦게 부토의 해외 공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1985년, 히지카타와 함께 부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오노 가즈오의 내한공연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독특한 양식적 특징을 가진 히지카타와 달리 오노는 즉흥성을 중시했다. 오노의 초청은 당시 창무회 대표였던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이 1983년 이화여대 교수 시절 미국 뉴욕에서 부토 열풍을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1993년 제1회 창무예술제(현 창무국제공연예술제)는 부토 특집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국내 무용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주류로 여겨지던 아시아 현대무용인 부토가 세계적 인기를 얻는 것을 부러워함과 동시에 반향을 일으킨 비결을 배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지던 부토 내한공연은 2000년대 들어 점차 뜸해졌다. 부토가 예전만큼 새로움과 충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흥성이 강한 부토의 경우 컨템포러리 댄스와의 경계가 모호한 탓도 있다. 2005년 한일 수교 정상화 40주년을 맞아 국제무용협회가 주최한 ‘부토 페스티벌’은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부토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토는 양대 단체인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과 산카이주쿠(山海塾)를 중심으로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다이라쿠다칸은 영화 ‘킬빌’ 등을 통해 배우로도 알려진 마로 아카지가 1972년 창단했고, 산카이주쿠는 다이라쿠다칸 출신의 아마가쓰 우시오가 1975년 창단했다. 다이라쿠다칸이 장엄하고 그로테스크한 무대를 보여준다면, 산카이주쿠는 신비롭고 제의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두 단체의 내한공연은 각각 2005년과 2007년이 마지막이었다.
올해 한일 수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산카이주쿠가 18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오는 26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코사’(KOSA)다. 2022년 스위스 초연 이후 여러 나라에서 공연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불확실성과 불안을 견디며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을 재건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산카이주쿠의 내한은 22~30일 세종과 서울에서 열리는 제31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의 일환이다. 올해 축제는 ‘대지의 목소리’를 주제로 산카이주쿠를 비롯해 전 세계 37개 팀이 참가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