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기’ 압박에 식품·외식업 ‘비명’… “폐업 직전 생존 가격”

입력 2025-08-14 00:13

경기도 성남에서 프랜차이즈 김밥집을 운영하는 정모(43)씨는 요즘 매일같이 계산기만 두드린다. 그는 “쌀이며 김, 시금치 값이 너무 올라 장사할수록 손해 보는 느낌이다.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 반면 불황에 손님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정치권과 정부는 외식·식품업계에 ‘당근책’ 없는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현실과의 괴리에 불만이 가득하다.

1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 태스크포스(TF)와 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주요 식품사 16곳, 12일 외식업체 11곳과 잇따라 물가 안정화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당정은 업계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면서도 “국내 물가 수준이 OECD 회원국 중에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민 일상과 밀접한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물가·고금리·내수 침체라는 삼중고에 처한 업계는 매 정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쥐어짜기식 압박’에 지친 모습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과 이상 기후 등 가격 인상 요인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여기서 비용을 더 줄일 여지는 거의 남지 않았다”며 “명품이나 자동차 가격이 수십만원 오르는 것은 용인되는 반면 식품은 몇백원 오르는 것만으로 더 강한 비난을 받는 구조가 문제”라고 토로했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탄핵 정국과 미국 관세 압박 등 악재가 겹친 탓에 대기업 상황도 좋지 않다. CJ제일제당 식품부문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1365억→901억원)이 내수 부진 탓에 전년 대비 34% 감소했다. 롯데웰푸드 영업이익(663억→343억원)은 46% 줄었다. 내수 비중이 큰 오뚜기의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 수준으로 급락이 전망된다.


분당의 김밥집 사례처럼 외식업계도 요즘의 가격 설정이 폐업 직전 ‘생존 가격’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비(非)주류 음료 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5% 올랐다. 1년 만의 최고치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크게 웃돌았다. 높아지는 원자잿값 부담에 서울에서 김밥 한 줄은 6월 말 기준 3623원으로 지난해 말(3500원)보다 3.5% 올랐다. 칼국수(9692원)와 냉면(1만2269원) 등도 각각 3.3%, 2.2% 상승하는 등 외식 물가 전반이 오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30조원 규모로 시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오히려 물가 상승 압력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상공인연합회 조사 결과 소상공인 과반수는 쿠폰으로 매출 상승을 체감했다고 응답해 정책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지만, 업계는 “수요 확대에 따른 물가 압력이라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가격 인하만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박한다.

현장에서는 현실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외식업계는 외식물가 구성요소별 가격 안정화 대책 마련,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개선, 배달 수수료 인하 등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독점적 배달 플랫폼에 대응하려면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운영 중인 공공배달앱들이 초기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