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훈계하면 모욕 준다… 준비 없으면 당하는 ‘트럼프 회담’

입력 2025-08-14 02: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무난하게 회담을 마쳤다. AFP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는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첫 대면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무역·안보 현안 등 무거운 숙제들이 남은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얼리티 쇼 같은 트럼프식 정상회담을 고려하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12일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벌어질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상 정상회담은 모두발언 뒤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언론 노출을 좋아하는 트럼프는 생중계되는 모두발언부터 언론 질의를 받거나 중요 현안에 대해 발언을 쏟아낸다. 2기 집권 이후 트럼프의 정상회담 방식을 보면 논쟁에는 역정을 내며 상대를 압박하지만 칭찬과 립서비스엔 약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 외교 참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다. 트럼프는 지난 2월 젤렌스키와의 백악관 회담에서 얼굴을 붉히며 “당신은 3차 세계대전을 두고 도박을 하고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미국에 매우 무례하다”고 소리쳤다. 젤렌스키가 외교를 강조하는 J D 밴스 부통령에게 “어떤 종류의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며 논쟁을 걸자 트럼프가 못 참고 폭발한 것이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트럼프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트럼프는 지난 5월 백악관 회담에서 확인되지 않은 남아공의 ‘백인 농부 집단 살해’ 의혹을 제기했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인 농부들이 남아공을 떠나고 있다”며 면박을 줬다. 관련 영상을 갑자기 틀기도 했다. 라마포사는 정중하게 반박했지만 트럼프는 경청하지 않았다.

반면 칭찬으로 트럼프를 흡족하게 한 정상들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나 노벨평화상 추천 사실을 언급하며 관련 서한을 직접 줬고, 트럼프는 “고맙다. 비비(네타냐후의 애칭)”라며 반색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회담에서 선방한 정상으로 꼽힌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 6월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나 “독일과 미국은 역사적 접점이 많고, 우리는 미국에 크게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계 미국인인 트럼프의 조부 출생증명서 사본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황금색 액자에 담아 선물로 줬다. 트럼프는 메르츠를 보며 “정말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했고, 독일 방문 요청도 즉석에서 수락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지난 2월 백악관 회담에서 “지난해 7월 암살 시도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당신이 일어나서 하늘 높이 주먹을 치켜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외신은 ‘아부의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시바는 위대한 총리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집무실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위험 구역이 됐다”고 표현했다. 철저한 대비 시나리오 없이는 트럼프의 원맨쇼에 끌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