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만든 건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목재 기술이 발전하고, 탄소 감축이 글로벌 의제로 자리 잡으면서다. 제자리걸음이었던 한국의 목조건축시장은 최근 몇 년 새 규제들이 사라지며 활성화를 위한 출발선에 섰다. 다만 대중화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마을에서 진행 중인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국내 최초 목구조 아파트가 만들어진다. 목구조(목조) 건물이란 목재로 건물의 뼈대를 세운 것으로, 인테리어의 목적으로 목재를 일부 마감재 등에 쓰는 것과 다르다. 100% 목재로도 뼈대를 만들 수 있지만, 안정성을 위해 콘크리트 등을 함께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하 3층, 지상 20층 규모로 총 130가구가 들어설 이 아파트에는 목조 18가구와 철근콘크리트 112가구가 구성될 예정이다. 목조로 지어질 18가구는 공학목재인 CLT(구조용 집성판·나무를 가로세로 교차해 겹겹이 붙여 제작한 목재)로 뼈대를 세운다. 3개 동 가운데 2개 동의 한쪽에 목구조 가구가 들어서는 식이다.
이원형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장은 “탄소중립에 동참할 방법을 고민하다 탈현장 건설공법(OSC)을 알아보게 됐다”며 “여러 공법을 검토한 끝에 매스팀버(중량목재·수축과 변형이 거의 없는 공학목재)와 철근콘크리트 하이브리드 목조 아파트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합 추산에 따르면 18가구를 목구조로 지음으로써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79.3%(5130t→1062t) 감축할 수 있다고 한다.
매스팀버 등 공학목재를 활용한 고층 목조 건물의 등장은 해외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탄소중립 의제와 만나 최근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는 31층 높이의 다세대 주택 ‘뉴트럴 에디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내년 완공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이 된다. 어센트(미국·87m), 미에스토르네(노르웨이·85m), 호호 비엔나(오스트리아·84m) 등이 대표적인 고층 목조 건물이다. 스위스와 호주에선 각각 100m와 183m의 목조 건물을 추진 중이다.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 목조 건축이 활발하지 않았던 건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전쟁 후 국가를 재건할 당시 피폐해진 산림은 녹화(나무를 심어 푸르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었고, 한국엔 콘크리트의 주재료인 석회석이 많았다. 이에 쉽게 구할 수 있던 콘크리트를 중심으로 건축 생태계가 조성됐고, 그 사이 목조 건축은 쇠퇴해갔다.
지진이 잦아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룬 일본과 이른 산업화 후 노동력 감소 등을 대비해 목재 건축을 발전시켜온 유럽국가들과 상황이 다른 이유다. 목조건축은 OSC에 유리해 콘크리트보다 덜 노동집약적이다. 강태웅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는 “저층 건물은 충분히 목재화돼있어서 목재 사용 확대를 위해 고층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2%가 건축 부문에서 나온다. 그중 15.0%는 시멘트, 철근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에 전 세계가 목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발표한 ‘탄소중립단지 구현을 위한 LH 아파트 목조화 방안 기획연구Ⅰ’에서는 “건축물 골조에 콘크리트 대신 목구조를 적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49%로 줄어든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고 나온다. 건물과 창호의 단열, 설비·조명의 효율, 신재생에너지 사용 등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한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OSC에 유리한 목재 특성상 공사 기간이 짧아 탄소 발생이 줄고, 전체 건축 비용이 낮아지기도 한다. 최근 강태웅 교수가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같은 구조의 4층 건축물을 콘크리트에서 목재로 바꾸면 건축비용이 19.0%(71억→57억5000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가 줄고, 건축에 필요한 인력도 줄면서 전체 비용도 감소한 것이다.
목재는 불에 잘 타고, 강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목재 자체는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목재의 무게 대비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에 견딜 수 있는 정도)는 콘크리트의 약 225배, 철의 4.4배에 달한다. 압축·휨강도 역시 목재가 가장 높다. 강한 물성에 기술을 더한 공학목재가 철강이나 철근콘크리트에 버금가는 강도와 안정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내화(화재를 견디는 힘) 성능도 마찬가지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철근콘크리트의 화재 발생 시 손실률이 90%인 것과 달리 목재는 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목재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국도 고층 목조건축물, 목조 공동주택이 지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0년 목조건축물 높이(18m) 제한이 폐지됐고, 공동주택 바닥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지난해 7월 사라졌다. 공공건축물 조성 시 목조 건축을 우선 적용하는 내용의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목조건축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도 지난해 11월 발의됐다.
물론 대중화하기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공동주택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기준인 층간소음 차단 성능은 아직 목조가 철근콘크리트보다 낮다. CLT 기준 중량충격음 최소 기준인 49dB을 충족하기 위해 5.7dB을 추가로 줄이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시장이 작아 영세한 기업이 대부분인 탓에 품질 수준이 제각각이고, 현장 기술 인력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목재는 습기에 약해서 설계와 시공이 잘 이뤄져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설계, 시공 인력은 콘크리트 건축물을 오래 해온 탓에 목조 부분에선 전문성이 높지 않은 편”이라며 “수입 목재를 사용할 경우 그게 우리나라 기후 특성에 맞는지도 정확히 따져보지 않은 상황이라,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재를 바라보는 인식 개선도 요구된다. 나무를 베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두기보다 잘 가꿔 써야 할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에서다. 강 교수는 “나무는 탄소를 저장하기 때문에 산림을 잘 가꿔서 집을 짓는 데 사용하면 탄소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목재는 관리만 잘하면 닳지 않는 재원”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쓸만한 나무를 만들기 위해 조림(숲을 조성하는 것)을 해야 10년 후 국산 목재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