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뜬 ‘미소천사’… “작은 친절로 복음 전해요”

입력 2025-08-14 03:03
이여호수아 선교사가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서 방문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가는 길은 말복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강한 햇볕으로 가득했다. 공항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휴가지로 향했고 그 틈으로 시원한 공항을 피서지 삼는 ‘공캉스(공항과 바캉스의 합성어)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어떤 이들은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어떤 이는 돗자리를 펼쳐놓고 잠시 눈을 붙였다.

12일 공항에서 만난 김말임 어르신은 올해로 7년째 공항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김 어르신은 여름 시작과 동시에 지하철 두 번을 갈아타며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공항에 출석도장을 찍는다. 그는 “이번 여름은 특히 더워서 예년보다 일찍 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내 피서지”라며 “이곳에 자주 오다 보니 안면을 트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지인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김 어르신처럼 공항을 휴식처로 삼아 방문한 이들을 세어보니 100여명에 달했다.

“또 오셨네요. 오늘 날씨가 참 덥죠.” “공항에 머무르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종교실로 찾아오세요.”

이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넨 이는 ‘환영합니다’라는 글자가 적힌 조끼를 입은 이여호수아(72) 선교사였다. 그는 제2여객터미널 종교실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미소운동(미소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2시간가량 공항 곳곳을 돌며 여행객과 직원들에게 미소와 인사를 전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길을 묻는 사람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생겼다.

인천공항 문화봉사단이 제2여객터미널 종교실에서 미소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이 선교사, 고혜순 사모, 조경열 목사.

평소였으면 복지관에 갔을 이은기(78)씨는 날이 더워지자 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씨는 “피서로 온 공항은 오늘이 처음인데 낯선 곳에서 만난 이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니 반갑다”고 말했다.

미소운동은 올해 초 제2여객터미널 종교실이 시작한 환대 캠페인이다. 운동 참여자들은 정중한 인사와 길 안내로 여행객과 공항 직원을 돕고 있다. 종교실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속해 있다. 기독교 담당 조경열(72) 목사는 “누군가에게는 공항에서 스쳐 지나간 작은 친절이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다”며 “미소운동은 문화선교의 한 형태이자 사랑을 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달 31일 공식적으로 이 환대 캠페인에 협력을 약속하며 ‘인천공항 문화봉사단’을 발족했다. 공사는 종교실에 공식 조끼와 명찰을 제공하며 힘을 보탰다.

그 영향은 공항 직원들 가운데도 나타났다. 인천공항 환경미화원 김재훈(가명·65) 집사는 일터 속에서 작은 미소운동을 하고 있다. 출근 전 매일 종교실에 들러 기도와 묵상을 한 뒤 양손에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나선다. 성경 구절이 붙은 간식과 커피를 나누며 동료들을 향한 환대를 시작한 지도 6개월이 넘었다.

공캉스족이 최근 인천국제공항에서 쉬고 있다. 종교실 제공

김 집사는 “이곳에서 기도하며 내 마음속 교만함을 깨닫게 됐고 회개 기도를 했다”며 “종교실에서 받은 고요한 위로는 내가 주변 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건강한 마음 밭을 만들었다”고 했다.

미소운동은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다. 제2여객터미널 종교실로 신청할 수 있다. 종교실은 미소운동을 진행하기 전 ‘1일 공항투어 가이드’를 제공한다. 봉사 전 공항의 의미 있는 공간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봉사자들이 깊은 애정을 갖고 사역하도록 돕는 것이다. 서울 마포 은퇴사모 모임과 인천 연희교회가 봉사 의사를 밝히고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조 목사는 “종교실의 미소운동은 환대의 정신을 나누고자 시작한 마중물”이라며 “비행기가 보이지 않는 공기에 의해 떠오르듯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친절과 돌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복한 터전을 만드는 통로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인천공항=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