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문제는 거래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간에 상당히 중요한 거래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한국 관광객에 대해 무비자를 시행한 이후 그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도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를 결정했다.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데 대한 상호적 조치이자 방한 관광시장 회복 전략의 일환이다. 다음달 29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전국으로 한시 확대키로 한 것이다.
여행업계는 반기고 있다. 업계의 숙원이었지만 불법 체류·취업, 저가 쇼핑 위주의 일정, 특정 지역 쏠림 등 과거의 부작용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거부돼 왔기 때문이다. 중국 전담여행사들은 가을 성수기 수요 확대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석 연휴와 겹치는 국경절 특수는 단기 효과에 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방한 수요 확대에 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오랜 기간 나름 누렸던 관광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중국인 무비자 혜택이 단순한 입국 편의 이상으로 제주가 수도권이나 부산·강원 등과 차별화할 수 있는 실질적 전략이 힘을 잃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주도에만 적용된 중국인 관광객 30일 무비자 입국은 제주 관광의 큰 강점이었다. 이번 조치로 제주를 선택할 유인이 그만큼 사라진 것이다. 제주도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과의 프로모션, 맞춤형 상품 개발 등 나름의 대응책을 내놨지만 한계가 있다. 당장 10월 중국 국경절, 11월 광군제 등에 대규모 방한 수요가 예고돼 있지만 비교우위가 사라진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제주도와 관광업계는 중국 단체관광객의 성향을 반영한 맞춤형 상품 개발과 홍보, 치안 대책 마련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내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숙박, 식당 등 업계 전반에 숨통이 트이는 상황을 겪어온 제주도에서는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것이다.
먼저 제주로 수학여행에 나서는 학교의 안전요원 고용 지원금을 기존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리고, 지원 기준은 20명에서 10명으로 문턱을 낮췄다. 또 수학여행단은 사전 예약 없이도 한라산 탐방(하루 최대 200명)을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제주도와 자매결연이나 협약을 맺은 단체가 20명 이상을 데리고 제주를 방문할 경우 1인당 3만원(최대 600만원), 15명 이상의 동창회, 동문회에는 1인당 3만원(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항공기 감편으로 인한 좌석 부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뱃길로 제주를 방문한 여행사, 단체관광객에게도 최대 15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대거 유입에는 관리가 필요하다. 정부는 외교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 협의로 전담여행사 중심의 사전·사후 관리 체계를 설계했다. 모집부터 숙소·동선까지 전담여행사와 전자관리 시스템을 통해 관리하고, 입국부터 귀국까지 안전하게 책임지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부작용을 막기 위한 노력도 따라야 한다. 불편했던 중국인들의 세태가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아질지도 모른다. 또 일부 전담여행사의 저가 상품이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는 등 나쁜 전례는 새로운 귀감으로 돌려야 한다. 업계는 품질 중심 상품 개발과 공정거래 준수를 약속했고, 정부도 전담여행사 관리 강화, 지역 분산 유도, 불법체류 사전 차단, 서비스 품질 제고 등 세부 방안을 정교화하고 있다. 새로운 관광의 시대가 열리면 양국에 더없이 좋을지 모른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