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소 후에도 여러 도움 덕분에 따뜻한 집에서 지내며 대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캐나다 어학연수도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문화와 영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20대 초반 여성이 지난 5월 구세군(김병윤 사령관)의 한 아동보호시설에 보내온 편지엔 자립 후 꾸린 안정적인 삶에 대한 감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이 시설에서 지냈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구세군회관에서 만난 구세군 사회복지부 최분란 차장은 “아이들에겐 지원금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누군가가 끝까지 동행한다는 심적 지지가 아닐까 싶다”며 “어려움을 딛고 잘 살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초등부터 시작되는 자립준비
구세군은 서울 서대문구의 서울후생원 등 전국 3곳의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다양한 필요를 물심양면으로 채워주고 있다. 시설에서 지낼 때 실시하는 자립교육이 가장 기본이다. 박준경 서울후생원 원장은 “중학생부터 해온 자립준비교육을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낮추어 받게 하려 한다”며 “반복적이고 더 꾸준하게 일상생활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기술 등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부터 금융·법률·주거 교육, 진로 탐색 등 현실적인 주제를 아우른다. 특강으로 성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박 원장은 성인이 되면 시설에서 내쫓기듯 자립을 시작한다는 세간의 편견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본인이 원하면 25살까지 거처를 제공하고 보호연장기간 이후에도 긴급 지원해야 할 사정이 생긴 퇴소생을 지원하는 곳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구세군도 그중 하나다. 박 원장은 “자립준비지원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해서 사후 관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설 소속 사회복지사가 퇴소생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러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취합한 지원과 혜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울후생원에서 일하는 정혜정 복지사는 “이런 장을 통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희미하게 보내는 힘들다는 사인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봉사자에 퇴소생까지 참여하는 멘토링
서울후생원 등 구세군 아동보호시설은 일대일 멘토링으로 아이들의 정서 안정도 돕는다. 서대문구청 소속 봉사자와 지역 교회 성도, 개인 등 자원봉사자가 아이들과 교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후생원에서 지내는 19살 김지연(가명)양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일대일 매칭 봉사자와) 이번 주에 주얼리공방에 가기로 약속이 돼 있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특성화고에서 애견미용사의 꿈을 키우던 김양은 올해 초 주얼리디자인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 구세군에서 외부 기관과 함께한 컴퓨터 그래픽 수업에서 김양이 제출한 디자인이 기념품 우산으로 제작된 일이 전환점이 됐다. 김양은 “인생 선배로부터 대학 입학 같은 진로 고민을 나눌 수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퇴소생과의 일대일 연결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다. 김양도 사회생활 중인 한 퇴소생과 연결돼 있다. 1년간 멘토링을 받았으며 기업 후원으로 함께 여행도 가며 추억을 쌓았다.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시설에서 열리는 홈커밍데이도 서로에게 위로의 시간이다. 박 원장은 “퇴소한 이들이 가정을 꾸린 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며 “자립에 성공한 퇴소생이 보육시설에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가장 중요한 건 ‘믿을 만한 어른’
12년 전 구세군의 한 아동보호시설을 퇴소한 박가영(가명)씨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적 관계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신뢰 관계가 단단하지 못한 자립준비청년에게 믿을 만한 어른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보육시설의 여러 선생님이 저에겐 좋은 어른이 되어 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소한 뒤에도 한 번씩 연락을 주셔서 도움이 필요하진 않은지 살피셨다”고 했다. 대학 휴학 후 재입학이 막막했을 때 교육비와 생활비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도 사회복지사였다. 박씨는 부모가 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보육시설에서 지냈었다.
“제가 입소했던 2008년도부터 지금까지 시설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셔요. 제가 찾아가 선생님들을 만나면 고향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가끔 안부를 묻고 ‘이런 지원 사업이 있는데 알고 있냐’며 연락해주시기도 하고요. 저를 만나면 반갑게 맞이하고 커피 한잔하자고 하시죠. 어떤 프로그램보다 제가 자랑하고 싶은 건 우리 선생님들이에요.”
구세군의 사회복지사들은 퇴소한 청년의 병원 동행 등 부모가 해줄 법한 일들을 직접 해주거나 외부 기관 봉사자를 연결해 도움을 주려 애쓴다. 서울후생원에선 현직 사회복지사 10여명과 퇴사한 직원 20여명이 아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멘토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서울후생원의 왕희정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