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60세 이상이면 대상포진 백신을 저렴하게 맞을 수 있는데, 생활권이 맞닿아 있는 우리 군은 왜 아무런 지원이 없나요.” 한 기초자치단체 누리집에 올라온 지역주민의 민원 글이다.
고령층 건강에 큰 위협이 되는 대상포진은 현재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에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소규모 예산으로 이른바 ‘미니 NIP’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이마저 하지 못하는 곳이 있고, 하더라도 지원 대상과 범위에 차이가 난다. 정보공개 청구로 확인된 대상포진 접종 미시행 지역은 전국 229개 기초단체 가운데 57곳에 이른다. 부산, 대구, 경기도의 다수 지역 등 노인 인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포함돼 있다. 얼추 330만명에 달하는 노인이 공공의 예방접종 지원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다. 지역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의 개별적 지원이나 자발적 예방접종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고령층은 기본적으로 정보 접근성, 경제적 여력, 질병 인식 등 3가지 측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이는 예방접종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 차원의 시행과 재정 투입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NIP 19종 중 17종은 12세 이하 어린이가 대상이다. 65세 이상은 계절독감과 폐렴구균(PPSV23) 2종뿐이며 지원 범위는 10년 이상 정체돼 왔다. 대한감염학회는 노인에게 독감, 폐렴구균,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대상포진, A형과 B형 간염 등 6종의 예방접종을 권고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이 6종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코로나19를 추가해 8종을 권한다. 많은 국가가 NIP로 도입하고 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한국의 경우 임상적 권고와 공공보건 정책 간에 간극이 크다. 국내에서도 이들 백신 중 일부에 대한 NIP 도입 요구와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나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매번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 배경에는 정부의 중장기 보건의료 정책 로드맵에 성인, 특히 고령자 예방접종이 설계 단계부터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감염병예방관리기본계획 등에는 해당 사항이 사실상 배제돼 있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질병관리청이 올해 업무보고를 통해 ‘생애 전주기 NIP 로드맵 마련’을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인 예방접종 정책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담기길 기대한다.
성인 예방접종은 감염병으로부터 개인의 건강 보호나 의료비 절감에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 참여 연장, 가족의 돌봄 부담 완화,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영국 보건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대상포진, RSV 등 4대 예방접종이 투입 비용 대비 최대 19배에 달하는 사회경제적 편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화여대 약대 연구팀이 대상포진과 RSV의 공공 도입 경제성 분석 결과를 처음 내놨다. 50세 이상에게 대상포진 백신 접종 시 투입 비용 대비 사회경제적 편익(ROI)은 1.52, 60세 이상에게 RSV 백신을 접종할 경우 투입 비용 대비 ROI는 1.65로 나왔다. ROI는 1보다 클수록 편익이 많음을 의미한다.
백신 도입 정책은 단기 예산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장기적인 건강 편익과 사회경제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고령층 예방접종 확대는 단순한 질병 예방을 넘어 사회 전반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유도하는 전략적 공공 투자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