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선교 소비시대

입력 2025-08-14 03:06

한국교회 타 문화 선교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로 급속한 양적 팽창이 이뤄졌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71개국에 2만1621명의 장기선교사와 516명의 단기선교사, 한국선교단체가 파송한 다른 국적 선교사 968명이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문화권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전진해 왔고 지금도 전진하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한국선교사의 양적 팽창과 현지 선교적 돌파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부으신 축복의 산물이다.

2000년대 이후로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다양한 곳에서 지역·권역 협의회와 교단·단체 선교사들의 권역별 모임이 활성화됐다. 지역을 넘어선 분야별 전략 모임, 지도자 모임 등도 구축돼 있다. 매년 수십 개의 선교포럼, 세미나, 전략회의, 지역대회, 전체대회 등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전략의 공유와 이해 확장을 비롯해 성찰, 연대, 영성회복, 사역의 정리 및 돌파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 역동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서 대두되는 우려 중 하나는 ‘선교를 소비하고 있는 듯한’ 현상이다. 지역대회를 제외하면 많은 대회와 세미나 참가자 면면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포럼족, 대회족과 같은 용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또 주최는 바뀌었는데 내용은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발표자료가 쏟아지지만 선교 현장에 실효적으로 적용될 만한 내용이 생각보다 적어진다. 자연스레 선교계나 교회의 피로감으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많은 행사가 열리는 거지’라는 의문을 표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40여년의 짧지만 역동적인 역사를 한국 선교계가 ‘행사’와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반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소를 바꿔가며 모이는 일에 빠지지 않고 귀중한 사역의 시간을 소비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수많은 모임에서 선교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현장에서 역동적인 돌파 소식은 줄어들고 있다. 선교사들의 새로운 각성의 기회가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선교사들은 ‘선교가 소비되는’ 현장으로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러한 모임이 선교에 있어서 본질적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모임이 영적 동력 없이 명분만 내세우고 목표와 내용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과는 감정적·추상적 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발표 자료, 참석자 수, 다양한 후기 등 외형적인 결과물에만 의존하면 책임감 있는 판단과 자원의 적절한 사용을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관성적으로 반복해 온 모임이 과연 선교 사역에 본질적인지 질문하고 이제는 목적과 목표 그리고 내용의 연관성을 철저히 구상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이러한 일을 구성하는 지도부 구성에서도 아름답지 않은 소리가 수면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알력이라든가 갈등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명 자리싸움이다. 이러한 긍정적·부정적 현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국 선교계 행사와 모임에 ‘선교적 본질’을 고민하며 한국 선교계 전체의 상황을 보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이런 고민을 통해 건강하게 진행되는 필수적 행사가 한국교회에 대한 건강한 책무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의 영적 충전을 위한 모임인지 전략모임인지에 따른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시간과 재원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목적에 따른 타당성 있는 운영을 감당할 실력을 갖춘 사람을 섬기는 이로 세워야 한다.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관례적인 회의·포럼·대회에 철저한 점검과 절제가 요청된다. 올해 남은 시간, 한국 선교계 안에서 선교대회와 각종 행사를 돌아보고 ‘과연 우리의 선교 지형 이대로 괜찮은가’를 질문하고 반성해야 한다. 청지기의 자세를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대행 (엠브릿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