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배우 김수영씨는 생애 첫 광고를 찍었다. 무더운 여름 유명 탄산음료를 손에 들고 청량감을 온몸으로 표현한 이 광고는 8월 한 달간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 전광판에 걸려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의 숨은 재능을 세상과 연결한 건 신생 예술·창작가 플랫폼 ‘아트워커’였다. 아트워커 앱을 통해 진행된 오디션의 경쟁률은 무려 300대 1에 달했지만, 무명 배우에겐 공평하게 열린 절차 자체가 기회였다. 김씨는 “전광판에 내 얼굴이 걸린 순간이 정말 짜릿했다”며 “사진 접수부터 심사, 발표까지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기회를 준 아트워커에 감사하며, 무명의 배우들이 이곳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회를 찾는 아티스트와 가능성을 찾는 제작자의 달란트가 좋은 방법으로 만나 잘 쓰이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아트워커를 론칭했다는 전지(36) 대표를 최근 서울 마포구 ‘리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숨은 재능 발굴, 공정한 기회 제공
전 대표의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은 대부분 한 번쯤 되묻지만, 한 번 설명을 들으면 잊지 못한다. 그는 “이란성 쌍둥이 동생 이름이 ‘전능’인데 부모님이 ‘전지전능’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담아 지어주셨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신앙 안에서 성장했다. 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학부를 졸업한 그는 프로덕션, 패션 브랜드,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전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글로벌하게 확장되고 있는데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사야 58장의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는 말씀이 전 대표를 움직였다. 이 말씀처럼 단절된 곳을 다시 잇고 무너진 틈을 메우는 일을 예술 분야에서도 실현하겠다는 마음이었다. 2023년 12월 ‘다시 세운다(Rebuild)’는 의미를 담아 ‘리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그는 “배우 지망생들은 제작사, 캐스팅 디렉터, 에이전시 등에 프로필을 보내며 기회를 찾지만 업계의 폐쇄적 구조 속에서 오디션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다”며 “제작자 또한 한정된 시간과 예산, 프로젝트 완성도의 책임 때문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인물에 의존해 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제작자에게는 다양한 인재와의 신뢰 기반 협업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트워커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이유다. 아트워커는 작품을 만들고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창작자를 뜻한다. 개발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전 대표는 “셀럽이 아닌 숨은 아티스트 200여 명을 발굴해 초기 라인업을 구성했다”며 “앱 론칭 6개월 만에 국내외 4000명의 아티스트가 등록한 것은 업계에서도 드문 성과”라고 말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플랫폼
아트워커는 영화 TV 광고·미디어 음악 디자인 공연 등 12개 예술 분야로 세분돼 있다. 현재 음악과 영화 분야에서 가장 많은 아티스트와 제작자가 활동하고 있다.
가입한 아티스트는 전문 분야와 경력, 작품 등 커리어를 담은 포트폴리오를 등록하고 클라이언트는 인재나 프로젝트 정보를 올린다. 매주 50~60건 이상의 프로젝트가 등록되고 있으며 아티스트는 요건에 맞춰 포트폴리오로 지원할 수 있는 구조다.
전 대표는 “사람들이 내게 ‘당신은 노동 쪽이냐, 시장 쪽이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나는 ‘시장을 바꾸는 중’이라고 답한다”며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이 공의롭게 평가받고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정직하게 기회를 얻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비전은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넷플릭스 예능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에서 박인석 PD가 아트워커에 의뢰한 OST 제작에는 32명의 무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30곡의 데모를 보내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박 PD가 ‘퀄리티가 높은 곡이 많아 쓸 곡을 선택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며 “최종 OST 곡으로 선정된 ‘지금 시작이야’를 만든 맥켈리 작곡가는 비록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년 경력의 실력 있는 작곡가였다”고 말했다.
아트워커 앱은 국내를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 등 17개국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국내 아티스트에게는 해외 진출의 발판을, 해외 제작자에게는 실력 있는 한국 아티스트와의 협업 기회를 제공한다. K팝과 K드라마로 이어지는 K콘텐츠 열풍 속에서 일부 에이전시에 제한됐던 기회의 문을 넓히는 것이 그 목적이다.
전 대표는 “에스겔 47장 12절 말씀에 성소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물이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것처럼 제 삶도 누군가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며 “작은 한 귀퉁이, 한 구간, 한 길이라도 주님의 손으로 보수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