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계속 묵상해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사역하다가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러 마을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동안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다양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고 이어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확인하신 후 처음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를 교회로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고를 듣고 항변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그를 꾸짖으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일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일주일을 살아내는 것이 곧 일상에서의 자기 부인입니다.
또한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덕주 감신대 교수의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온 이듬해인 1886년 황해도 소래 교인들이 서울 정동의 선교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3년 넘게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출발 전, 마태복음 16장 24절과 마가복음 8장 34절 말씀을 읽고 예루살렘이 곧 서울이라 생각해 각자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짊어지고 왔습니다. 언더우드는 그들의 믿음에 감동해 직접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는 ‘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그리고 대속물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삶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은 거룩한 길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내고 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함께 이 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이기에 우리는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겁고 버겁게 느껴질지라도 그 십자가가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부르심의 은혜를 붙잡고 오늘도 그 거룩한 길 위에 서 있는 제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혼자가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걷는 여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격려할 때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홍승만 목사(서울기독대 교수)
◇홍승만 목사는 서울기독대 휴먼서비스학부 기독교 신학 전공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선교신학회 서기, 한국실천신학회, 한국얌스펠로쉽, 인터서브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