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하남의 미래를사는교회(이상용 목사)의 1층 중예배실이 경기 평택과 화성 등에서 차로 수 시간을 달려온 다른 교회 어린이들로 꽉 찼다. 전날부터 2박3일간 이 교회에서 치러진 JK비전캠프에 함께한 초등생 78명과 교사들이다. 이날 낮 교회 앞마당에서 물놀이하고 낮잠을 자고 저녁 식사까지 마친 아이들은 설교부터 조별 발표, 연극 관람까지 이어진 저녁 페스티벌에서도 마냥 신난 모습이었다. 이번 캠프 참가자기도 한 화성의 조암신흥교회(장명희 목사) 초등부 ‘예꿈 찬양단’은 찬양 인도도 했다. 이들은 JK비전캠프를 기획한 박재화 미래를사는교회 다음세대총괄 목사가 AI를 활용해 만든 캠프 주제곡을 2달 전부터 연습했다. 예꿈 찬양단 인솔교사인 조수진 집사는 “3년째 이 캠프에서 찬양 인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해한다”고 했다.
미래를사는교회가 다른 지역의 작은 교회 아이들을 초청하는 초등 여름 캠프를 연 건 벌써 15회째다. 매년 참여하는 아이들도 제법 된다. 박예린양은 “내년엔 중학교에 들어가 오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즐거운 캠프의 나비효과는 다양하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최대인 미래로교회 안수집사는 “여름 캠프에 함께 가자며 친구를 전도해 오는 아이도 있고, 캠프 참여 이후 교회에서 청소년 교사로 봉사하는 아이도 봤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환갑을 맞아 생긴 큰돈을 캠프 간식에 써달라며 헌신한 권사님도 있었다”며 “더 많은 교회가 ‘내 교회 아이들부터 돌본 다음에’라는 생각을 넘어 베풀며 함께 행복을 누리길 소망한다”고 했다.
지역사회 소멸 속에 지방의 작은 교회가 느끼는 교세 약화는 현실 그 자체다. 큰 도시보다 훨씬 심각한 고령화를 겪는 만큼 다음세대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자체적으로 여름 캠프도 운영하기 힘든 교회가 적지 않다. 외부 캠프를 참가하려 해도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역 개척교회의 한 전도사는 “아이들에게 신앙의 추억을 선물하고 싶지만 외부 캠프 참가비가 한 명당 10만원이 넘어 그마저도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른 교회의 아이들까지 품으려는 도심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정이나 인력이 넉넉한 대형교회가 어려운 지방교회를 돕는 식의 접근과는 사뭇 다르다. 캠프를 주최하는 교회들은 내 교회와 네 교회로 구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며 건강한 다음세대로 키워내는 상생을 꿈꾸고 있었다.
“저녁 나들이, 신나요” 여행 같은 캠프
서울 공덕교회(이금만 목사)에서 지난달 말 3일 동안 열린 연합성경학교엔 전북 익산의 빛내리교회(김철우 목사) 유년·초등부 아이들 9명이 KTX를 타고 왔다. 목사 부부와 교사들도 동행했다. 공덕교회 유년부 부장교사의 제안으로 처음 시도한 지방교회 어린이 초청 캠프였다. 김철우 목사는 “낯선 서울 교회 환경에서 아이들이 혹시 주눅 들까 봐 처음엔 걱정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문구가 적힌 공간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고 했다.
초대받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둘째 날 저녁 인사동으로 조별 나들이였다. 김 목사는 “(지방 소도시에선) 저녁 7~8시가 넘으면 깜깜해져서 밖을 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친구들에겐 모든 게 새로웠다”며 “참여 아이 중엔 서울에 처음 와본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김 목사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들이 평소 가고 싶어 하던 방탈출 카페, 키즈카페에 가는 일정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기타, 드럼 등 반주에 맞춰 찬양한 것도 아이들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KTX를 타고 익산에 도착해 집까지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성경학교에서 함께 나눴던 찬양을 목청껏 불렀다고 한다. 김 목사는 “청년 교사가 없는 지역이기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해왔다”며 “공덕교회에서 캠프 마지막 날 레드카펫 시상식을 열어주는 등 아이들을 섬세하게 돌봐주시는 모습을 보며 배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내 연대를 넘어 도심과 지방 교회가 꾸준히 연대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공덕교회의 교육총괄인 유혜선 목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걱정이 적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동안 우려보단 희망을 더 크게 확인했다”며 “지역교회의 베테랑 교사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접목하는 등 장기적인 연합을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이금만 공덕교회 담임목사는 “어른에게도 어려운 연합을 어린이들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초대받은 청소년들의 섬김 경험
경기도 고양 일산서구의 청소년연합교회(소재웅 목사)는 매년 다른 교회 청소년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연다. 올해 경기 연천에서 주최한 2박3일간의 여름수련회엔 중고등학생 35명이 참여했다. 소재웅 목사는 “첫 회 12명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며 “올해는 서울 은평구, 경기도 고양·파주 등 수도권 작은 교회 아이들뿐 아니라 강원도 속초에서 4명이 함께 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회는 2023년 1월 예장통합 서울서북노회가 노회 소속 220여 교회 중 청소년 예배를 드리기 어려운 교회를 위해 설립했다. 소 목사의 청년 제자들이 캠프 교사로 참여하고, 청소년을 보내온 한 교회의 장년들이 식사 등을 돕는다. 소 목사는 “한 가정의 아이가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오는 것처럼 여러 교회의 아이들이 수련회에 모여 경험하고 다시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 참여하는 학생들은 지역 봉사를 통해 섬김의 대상만이 아닌 사역 참여자로 거듭나는 경험도 한다. 올해 여름수련회에선 지역 어르신에게 대접할 식사를 나르고 준비한 판소리 공연을 선보였다. 어르신 20명과 일대일로 연결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다른 지역을 가 어린이 캠프를 열어주기도 했다.
소 목사는 “매해 같은 친구들이 우리 수련회에 오는 걸 보는 게 저희에겐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연합의 가치를 가진 교회들이 먼저 나서주는 것이 연대와 상생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님 아닌 연대… 두 달간 함께 준비
인천 불로교회(한민수 목사)는 4년째 초등부 지역 아이들을 초대해 여름 캠프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1박 2일간 치러진 올해 캠프엔 14개 교회의 어린이 110명이 서울과 인천, 경기도 파주·김포 등에서 와 불로교회 아이들 50여명과 어울렸다. 한민수 목사는 “아주 큰 교회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 모두 교회에서 잘 순 없어 본 교회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잤다”고 설명했다.
초대받은 교회 교사 40여명도 캠프 사역자로 참여했다.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온라인 화상회의로 세미나를 열어 캠프 커리큘럼을 나누고 함께 준비한 것이다. 한 목사는 “실제로는 캠프 날 처음 봤지만,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처럼 어색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공유된 찬양과 율동은 캠프 전 각 교회에 전달됐고, 교회에서 자체 제작한 공과도 자료도 미리 제공됐다.
한 목사는 “캠프에 초대된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이 캠프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교회 간 지속적인 연대를 위해 앞으로 필요하면 공과 자료를 계속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불로교회는 앞으로 다른 교회와 함께 떠나는 선교여행도 계획 중이다. “예수님은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없다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교역자 모임에 가보면 교회 크기에 따라 큰 사람, 작은 사람이 나누어져 있는 모습을 볼 때가 많습니다. 작은 교회라도 그마다 장점이 있거든요. 각자의 장점을 나누면서 함께하는 것, ‘내 교회’가 아닌 ‘우리 교회’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