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의 총탄에 사망한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그제 나왔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 중령은 12월 13일 0시20분쯤 정 사령관을 불법 체포하기 위해 난입한 반란군 측 3공수여단 병력과 맞섰다. 교전 중 총탄 6발을 맞고 현장에서 숨진 그의 죽음을 반란군은 ‘직무수행이나 훈련 중 사망’을 뜻하는 ‘순직’으로 기록했다.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해 사망한 사람’을 뜻하는 ‘전사’로 인정되어야 마땅함에도 스스로 반란군임을 인정하기 싫었던 전두환 신군부가 그를 순직자로 처리한 것이다.
김 중령이 한동안 순직자로 기록됐던 것과 달리 이해할 수 없는 전사자들도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계엄군들이다. 당시 계엄군 사망자는 22명이었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으로 인한 사망자였지만 신군부는 이들 모두를 전사자로 예우하고 현충원에 안장했다. 계엄군 사망자들도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이들을 전사자로 예우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결국 국방부는 40년 만인 2020년 이들의 죽음을 전사에서 순직으로 변경했다. 김 중령의 죽음이 순직이 아닌 전사로 인정된 것은 이보다 더 뒤였다.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2022년이 되어서야 김 중령의 사망을 전사로 정정했다.
전사와 순직 모두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지만 모든 국가에서 전사자를 더 예우한다. 수여되는 훈장과 보상금, 연금에도 차이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명예다. 군인에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투 중 숨졌다는 것보다 더 큰 명예는 없다. 김 중령의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 판결에도 그가 전사자로 인정된 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판결이 그의 명예를 드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가족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