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금투세 폐지의 대가

입력 2025-08-14 00:38

지난해 9월 24일 국회에서 팀배틀 방식의 토론회가 열렸다.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명씩 ‘유예팀’과 ‘시행팀’으로 나눠 공방을 벌인 것이다. 유예팀은 증시가 침체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금투세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고, 시행팀은 금투세 도입과 주가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 토론은 치열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의원들은 당 지도부에 결정을 맡겼다. 40여일 뒤인 11월 4일 민주당 지도부는 유예도 시행도 아닌 ‘폐지’ 결정을 내렸다. 다수당인 민주당의 결정으로 2020년 여야가 합의해 도입하기로 했던 금투세는 시행도 못 해보고 폐지됐다.

나는 이때의 결정이 지금 민주당에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둘러싼 현재 민주당 내부 이견은 근본적으로 금투세 문제에서 원칙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해 유예팀과 시행팀이 토론을 벌였을 때까지만 해도 원칙은 살아 있었다. 시행 시기에 관한 의견이 달랐을 뿐 금투세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논의 차원을 뛰어넘은 폐지 결정으로 자본시장에서 조세에 관한 민주당의 원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에서 10억원으로 원상복구한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놓고 민주당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이런 원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결정은 수년 전부터 한국 자본시장에 드리워진 포퓰리즘과 관련이 있다. ‘1400만 투자자=표’라는 인식에 정치 지도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말과 행동만 한다. 이를 눈치챈 투자자들은 증시 침체의 이유를 정책과 제도로 돌리고 주가가 빠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에는 상법 개정 요구와 같은 타당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지만,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투자자 눈치를 보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흐름에 불을 붙인 인물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불만을 표하자 금융 당국의 반대에도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했고, 대주주 양도세 기준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했다. 지난해 1월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금투세 폐지를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주식 투자자들 앞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본시장의 포퓰리즘에 올라탔다.

정부 여당이 내건 ‘코스피 5000시대’ 구호도 다분히 포퓰리즘적이다. 비록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나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나름의 철학과 경제적 지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실용주의를 추구한 이명박정부의 747(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국가)도 주가지수를 정책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주가는 경제 정책, 기업 활동, 글로벌 정세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일 뿐이며, 그것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시장 분위기가 좋지만 주가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 그때 투자자에게 제시할 카드가 남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시장의 포퓰리즘이라는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주식의 매매차익에 보편적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그에 걸맞은 금투세 도입을 다시 추진하면 된다. 현재 금융 관련 세제는 상품에 따라 과세 대상 소득과 세율이 다르고 장기 투자에 따른 세제 혜택도 제공되지 않는 등 엉망이다. 금투세 도입으로 조세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장기적으로 주가 상승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