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법치를 외치면서 헌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이율배반적 모습, 가짜뉴스와 비논리적 궤변, 욕설과 저주로 도배된 집회.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이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속 극우 개신교인의 행태를 관찰하며 든 단상이다. 최근 ‘전광훈 현상의 기원’(뜰힘)을 펴낸 배 원장은 이 기간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를 보면서 “분노와 수치, 좌절을 반복해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십자가를 들먹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에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은 좌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전후로 광장에서 나타난 전광훈 현상과 그 근저의 역사적 맥락을 치밀하게 밝혀낸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서울신학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서 교회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신학자이자 백향나무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다. 책은 한국교회 이념 지형도 연구에 천착해온 배 원장이 여러 매체와 학회서 기고·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해 완성했다.
논의를 본격 펼치기 앞서 그는 이 질문을 던진다. “왜 한국교회 내 이렇게 많은 극우주의자가 존재하며, 이들은 왜 비상식적·비논리적·비도덕적·비민주적으로 행동하는가.” 배 원장이 가장 먼저 꼽은 원인은 냉전으로 인한 한반도 분단이다. 공산 정권을 피해 월남한 기독교인이 한국교회에 자리매김하면서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친미주의에 경도된” 정치 성향이 점차 득세했다고 본다. 한순간에 가족과 고향, 전 재산을 잃은 이들이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분노와 공포를 집단적 무의식이자 삶의 양식으로 내재화했다”는 평이다. 역사적 측면에서는 ‘정교 유착’을 든다. 대표적 예로 “원한이 복음을 압도해 반공 국가 건설의 결사체가 된” 제주 4·3 사건 속 일부 기독교인의 행보와 교회가 “독재 정권 지도자를 지지한 일”을 꼬집는다.
신학적 측면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건 ‘근본주의 신앙’이다. 본래 근본주의는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과 성경의 모든 글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됐다는 ‘축자영감설’을 토대로 문자적 해석을 중시한다. 미국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근본주의 신앙이 국내에서 “우익 정부와 배타적 일치, 숭미(崇美)와 반북(反北), 진보적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으로 표출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배 원장은 무엇보다 근본주의를 경계하며 한국교회가 이와 분리될 것을 당부한다. “한국 사회의 발전 및 그 안에서 변화된 교회의 사회적 지위와 내부 구성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할 때 근본주의는 ‘유효 기간 지난 상품’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근본주의와의 결별이 보수주의의 종식이자 기독교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기만적 선전과 시대착오적 선동”이라고 선 긋고, 그것에 흔들려선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한다. 교리적 순수성을 지키고 세상의 타락한 풍속에 저항하는 종교의 본령조차 부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를 지키고 실천하는 방법이 “혐오와 욕설, 폭력일 순 없다”는 것이다.
“교회 내부선 분열되고 밖에선 비난받는” 내우외환의 상황,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합리적 방식으로 세상과 진리를 논하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기독교가 2000여년간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여러 문명과 수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 건 성경과 기독교가 제시한 보편적 진리 때문이다. 그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진지하게 살피고 세상과 소통하는 건 성육신적 신앙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했다.
예배의 언어로 신성모독과 불법, 이단적 행태를 일삼는 이들과 결별할 것도 강력히 제안한다. 한국교회가 이에 앞장서지 않는다면 “그 피해와 악영향은 고스란히 평범한 교인과 시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한국 개신교 흑역사의 배경과 원인, 대안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책이다. 정치 성향에 따라 공감대가 각기 다르겠으나 기독교인이라면 “섬김과 예배에 근거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그의 대안에 이견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본질로 돌아가라”란 종교개혁 구호가 아직 유효하다는 교훈도 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