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19) 용기 내어 조선학교 방문 “학교 위해 도울 일 있을까요”

입력 2025-08-14 03:04
2018년 한국교회 선교팀원들이 일본 오사카 조선학교 재학생들에게 풍선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선물하고 있다. 고정희 선교사 제공

조선학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오사카까지 왔는데 집 앞에 있는 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도 컸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있었다. 날마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등하교하는 아이들의 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 어떻게 문을 두드려야 할지 몰라 주님만 구하고 있었다.

2016년 2월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한 일본 여성이 찾아왔다. 비어있는 교회에 누군가 사는 것 같아 궁금해 들렀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쿠미였다. 남편이 재일 조선인 3대라고 했다. 그녀는 그날 이후 자주 찾아왔다. 함께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제하게 됐다.

“바로 앞에 있는 조선학교를 들어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고 있어요. 봄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요.” 활발한 쿠미상은 “제가 같이 갈게요. 당장 가요”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쿠미상의 적극적인 성격을 쓰셨다. 그의 남편은 우리의 대화를 듣고도 일어나질 않았다. 그는 나만 가는 것이 부드럽고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일단은 쿠미상이 있어서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커다란 철문을 열고 운동장을 지나 교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복도에 있는 사진들을 본 쿠미상도 나에게 “혼자 가는 게 좋겠다”며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이 끝까지 하시길 기도하며 씩씩하게 들어갔다. 하나님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길을 만들어 가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학교를 돕고 싶어서 온 목사 부인입니다. 한국인인데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오늘 사정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지만 저희가 학교를 위해 도울 일이 있을까요.”

금방 쫓겨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들은 나를 신기하게 보며 상냥하게 대해 주셨다. 마음이 놓인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마구 이야기했다. 전화번호를 주고 가면 교장 선생님이 오시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히가시 조선중급학교 교장입니다. 오후에 시간 되시면 학교로 와주십시오.”

교장은 한국인 목사 부인이 학교를 찾아온 것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 했다. “목사와 그 부인이 우리 학교를 찾아오신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조선학교를 찾아가는 게 그만큼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도울 일이 없을지 교장에게 여쭈었다. “우선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잘 지내보세요. 졸업식 입학식 축제 등 학교행사에 오셔서 아이들과 자주 만나서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도요타 할머니 가족들도 단지 자주 만나서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하셨지.’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이념에 대한 편견이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철문을 닫고 나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고후 10:4)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