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점업계 간 임대료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면세점 철수’와 ‘소송 대응’이 오가며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면세점업계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소비 패턴 변화로 적자에 시달린다며 과도한 수수료 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천공항은 그러나 계약 신뢰성과 법 위반 소지를 들어 임대료 감면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계약 해지’로 수순이 이어지면 1900억원에 달하는 위약금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소송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사태의 발단은 2023년 4월 신규 면세사업권(향수·화장품, 주류·담배) 입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이 제시한 여객 1인당 기준가(5346·5616원)의 각각 168%(신라·8987원), 161%(신세계·9020원)를 임대료로 써내며 10년 운영권(2023년 7월~2033년 6월)을 확보했다. 당시에도 적자 경영 우려가 나올 정도로 비싼 값에 사업권을 땄다. 현재 기준 매달 약 300억원의 임대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엔데믹 이후다. 중국 단체 관광객은 2019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않았고, 온라인 주류 구매 허용 등으로 면세점 1인당 매출액이 하락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12일 “공항 이용객 수는 늘었지만 매출 구조가 바뀌어 매달 수십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며 “사업 환경이 변한 만큼 임대료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면세점 한 곳당 매달 50억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박하는 인천공항 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면세점 임대료는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써낸 가격이다. 중국 관광객 감소나 소비 패턴 변화는 조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김창규 인천공항공사 운영본부장은 “면세점업계의 감액을 수용하면 배임 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다른 사업자와 형평성 문제도 크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공항은 면세점업체에 총 1조4907억원의 임대료 감면 혜택을 줬다. 신라가 2672억원, 신세계가 8333억원을 감면받았다. 현재 면세점 임대료 수준은 2019년 대비 약 80% 수준이다. 다만 롯데면세점은 이 논란을 피했다. 2018년 롯데면세점은 과도한 임대료를 이유로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을 내고 일부 사업을 철수했다. 2022년에는 계약 종료로 사업권을 철수하게 됐다. 롯데도 새로운 사업권 입찰경쟁에 참여하긴 했으나 탈락하며 사업에서 물러났다. 이후 빈자리를 신라와 신세계가 차지했다.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며 위약금 반환소송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회사마다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순순히 진행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공항과 면세점업계의 갈등에는 인천공항의 과도한 ‘비항공수익’ 의존이 원인으로 꼽힌다. 인천공항의 지난해 매출(2조5017억원) 중 비항공수익(1조5310억원·61.2%)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면세점을 통한 수익(6798억원) 비중이 적잖았다. 이착륙료·공항이용료 등 항공수익은 9707억원에 불과했다.
인천공항의 수익성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잖다. 물류와 항공 서비스를 강화하고, 면세점업계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실정을 분석해 유연하게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이른 결론을 촉구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