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진행된 자유무역주의 방식은 더이상 미국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중심의 새로운 자유무역 체제를 구상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사진)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12일 한국경제인협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32차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총회 특별 세션에서 이같이 말했다. PECC는 정부 기업 학계가 참여하는 APEC 정책 싱크탱크다. 올해 한국이 20년 만에 APEC 의장국을 맡으면서 PECC 총회도 서울에서 개최하게 됐다.
로빈슨 교수는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해 세계화의 성과가 미국 내에서 불균등하게 분배되면서 발생한 ‘백래시(backlash·집단적 반발)’라고 분석하며 “과거의 세계화는 더 이상 미국 국내 정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미국 없이 자유무역을 추진하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자발성, 개방성, 비구속성, 합의 기반 협력이라는 APEC의 ‘열린 지역주의’ 원칙은 다자주의 쇠퇴와 보호주의 강화 등 ‘닫힌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글로벌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APEC이 ‘국가’ 대신 ‘경제체’ 개념으로 운용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더 유연한 정체성이 필요한 시대에 새로운 국제 협력 체계를 구상하는 데 유럽연합(EU)보다 더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산업·문화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며 “APEC 내에서 다양한 대화와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로빈슨 교수는 강연 후 일부 매체 인터뷰에서도 1973년 석유파동 당시 한국이 ‘중동 건설 붐’을 일으켰던 것처럼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인공지능(AI) 선도국가라고 보는 나라는 적다”며 “(정부가) 기본소득을 추진하면서 AI·로봇 발전 인센티브나 AI 혁신을 저해하는 영향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