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퇴출돼야 할 세력이 되레 혁신파를 쫓아내려 하는 국힘

입력 2025-08-13 01:30
국민의힘 김문수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공당, 그것도 107석이나 가진 제1야당의 모습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건전한 보수의 적통을 이으려는 정당이 아니라 아스팔트 극우 세력의 놀이터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급기야 12일에는 8·22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문수 당대표 후보가 당의 혁신을 촉구해온 경쟁자인 조경태 후보를 향해 탈당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김 후보는 조 후보가 내란특검 조사에 응한 것을 두고 “이재명 정권의 폭주에 부역한 사람은 당에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는 역시 혁신파인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가 자신을 비판했다면서 당에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다. 김문수 후보는 이번 전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복당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고 “계엄으로 누가 다치기나 했나”라고 하는 등 극우 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전씨는 지난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혁신파에게 ‘배신자’ 야유를 주도하며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날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도 혁신파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정작 퇴출돼야 할 사람들이 극우층에 기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고 기를 쓰고 있고, 당을 혁신해 보수를 재건하려는 이들이 되레 공격을 받고 있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극우 아스팔트 목사와 활동했던 김문수 후보는 지난 4월에 대선에 출마하려고 입당했고, 전씨는 대선 뒤인 지난 6월에 당에 들어왔다. 입당 2~4개월밖에 안 된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당을 끝 모를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전대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당직자인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이날 당직을 사퇴하면서까지 “당심을 민심으로부터 떨어뜨려 당을 사유화하려는 윤 어게인 세력을 막아야 한다”고 비판했을까.

당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현 지도부의 잘못이 크다. 윤 전 대통령과 극우 세력 눈치를 보느라 그들과의 단절에 실기하고 혁신도 미적대면서 극우 세력이 더욱 활개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대를 통해 극우 세력이 당을 접수한다면 국민의힘이 제대로 된 공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극우당 정체성이 확고해지면 등을 돌리는 국민이 더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피하려면 지도부는 전대 전이라도 극우 세력과 확실히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당원들도 이번 전대에 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