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슴슴함의 미학, 깨어 있는 사랑

입력 2025-08-16 03:08
일가 김용기 선생이 육신과 영혼의 잠을 깨우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개척의 종’을 치고 있다. 김 선생은 이 종을 60년 넘게 쳤다. 송길원 목사 제공

올여름은 유난했다. 117년 만의 7월 초 최고 기온, 100년 만의 강우. 기록만으로도 과장이 아니었다. 폭우와 폭염 속 열대야가 길었다. 그 뜨거운 밤을 더 달군 소식이 벼락처럼 왔다. 일가상 수상. ‘나 같은 게 무엇이라고.’ 숨고 싶었다. 조용히 지나가야지 마음먹는 사이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전화가 잇따랐다. 재단에서 수상 소감을 청했다. 며칠을 끙끙댔다. 결국 수은주 40도에 육박한 날 김용기 장로님 묘소로 향했다. 젊은 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반 평 남짓한 묘 앞에 섰다.

스물네다섯, 가나안농군학교 교육생으로 처음 뵈었다. 단아한 체구, 소박한 삶. 첫인상은 한 단어로 모아졌다. ‘슴슴함’. 진한 것보다 연한 것이 오래 남는다. 같은 초록이라도 연초록처럼 조용하고 그윽했다. 늘 먹어도 물리지 않는 엄마의 밥상 같았다. 절제된 맛, 한국적 미학의 여백과 안온이 깃든 품성. 그때는 몰랐다. 그 ‘슴슴함’ 속에 얼마나 큰 위대함이 숨어 있는지.

장로님의 삶은 한결같이 겸손했지만 말씀은 단호했고 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 새벽 산책길. 누워 있던 돌들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돌도 게으르면 안 돼.” 그 한 마디가 태풍처럼 영혼을 덮쳤다.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사회와 국가의 중심이 가정이므로 그 가정을 먼저 다스린 연후에 이웃을 돕고 농군학교를 세워 남의 교육사업도 한다.”

이 유시(諭示)는 내 안에 가정 사역의 DNA가 되었다. 일생을 의료선교로 살겠다는 결심을 접고 정든 교정을 떠났다. 광야의 개척자로 나서게 한 부름이었다. 가나안농군학교 곳곳에 새겨진 복민(福民) 사상은 내 신앙과 인문학의 기초가 됐다. 하루 네 시간의 구국기도는 사도 바울의 심장(롬 9:1~3)을 꿰뚫는 몸부림이었다. 그때 알았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사실을. “조국이여 안심하라.” 장로님의 민족애는 젊은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장로님의 ‘슴슴함’은 무심함이 아니었다. 소란스럽지 않기에 오래 남고 담백하기에 더 깊이 스며드는 힘이었다. 그것이 장로님이 남기신 가장 큰 유산이다. 묘소를 떠나 돌아오는 길, 새벽에 묵상했던 느헤미야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굶주릴까 봐 하늘에서 먹거리를 내려 주시고 목마를까 봐 바위에서 물이 솟게 하셨습니다… 그 땅(가나안)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하라 하셨습니다.”(느 9:15)

국민소득 100달러 남짓 시절, 장로님은 외치셨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 이사야의 사자후를 닮은 음성은 대통령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잘살아 보세’로 상징되는 새마을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이제 소득 4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가 됐다. 세계 6위 경제 강국을 눈앞에 두었다. “자손은 요새화된 성채들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먹고 만족하여 살이 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큰 복을 한껏 누렸습니다.”(느 9:25)

오늘의 한국교회가 겹쳐 보였다. 배부른 교회는 깊은 잠에 빠졌다. 절박한 기도가 사라졌다. 산야를 밝히던 촛불은 오래전에 꺼졌다. 삼각산을 달구던 구국기도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치유기도와 입시기도가 자리를 채웠다. 우리 또한 외친다. “우리 하나님이여, 작은 자라 여기지 마옵소서… 우리 고난을 보시고 건지소서.”(느 9:32)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과 우리는 갈린다. 그들은 고백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습니다. 주님은 옳으십니다.”(느 9:33)

풍요 속에 게을러진 믿음, 분열에 길들여진 언어, 이웃을 소모품으로 만든 생활. 이것이 우리 잘못이다. 장로님이 오늘 살아계신다면 이번에는 돌이 아니라 교회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우리는 종종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지 않고 ‘교회를 세운(웠)다’고 말한다. 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삶이기 때문이다. 무너진 것은 성벽이 아니라 마음이다. 다시 세워야 할 것은 탑이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다.

머잖아 장로님 탄생 120주년을 맞는다. 왜 지금, 다시 김용기가 소환되는가. 이유는 분명하다. ‘슴슴함’의 미학 속에 깃든 위대한 실천, 복민의 사랑, 구국의 기도, 그리고 가정에서 시작된 개혁. 이 유산이 절박해서다. 종소리가 멎은 시대다. 새벽을 깨우던 가나안의 종, 그 종소리를 가슴 저미도록 다시 듣고 싶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