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11번째 ‘세계디자인수도’… 헬싱키·밀라노와 나란히

입력 2025-08-14 02:11
세계디자인기구 실사단이 지난 6월 부산 수영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F1963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들은 부산을 찾아 영도 베리베리굿봉산마을, 동서대학교, 북항일원 등을 방문하며 부산의 시민 참여형 디자인 실천 사례, 디자인 중심 교육체계, 도시 정책과 디자인의 통합적 접근 등을 종합적으로 둘러봤다. 부산시 제공

부산이 2028년 세계디자인수도(WDC·World Design Capital)로 최종 선정되며 글로벌 도시브랜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2010)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세계적으로는 열한 번째 WDC 도시가 된 부산은 디자인을 통한 도시 혁신과 브랜드 정체성 재설계에 나선다. 세계디자인기구(WDO)는 “부산은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문화적 풍요로움, 포용적 혁신을 위한 촉매제로 디자인을 활용해 온 오랜 노력을 인정받았다”며 “도시 정체성과 목적을 디자인으로 재정립하는 매력적인 비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WDC는 WDO가 2년마다 지정하는 국제 프로그램으로, 디자인을 통해 경제·사회·문화·환경 발전을 이룬 도시만이 이 타이틀을 얻는다. 헬싱키(2012)는 ‘임베디드 디자인(embedded design)’을 주제로 시민의 90% 이상이 WDC를 인식하고, 3분의 2가 직접 활동에 참여했다. WDC 이후에도 ‘디자인 드리븐 시티(Design Driven City)’ 프로젝트를 통해 행정 전반에 디자인을 내재화했고, 모든 시 공무원이 디자이너와 직접 협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다양한 도시재생, 공공서비스 개선, 문화 프로그램 등의 경험은 도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됐다. 부산이 내세운 ‘포용적 도시, 참여적 디자인’ 전략도 시민을 도시 문제 해결의 공동 설계자로 참여시키고, 이들이 만들어낸 프로젝트와 성과를 도시브랜드 스토리로 확장·계승하는 모델과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사례는 부산이 주목할 만하다. 밀라노는 매년 4월 열리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와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를 통해 도시 전역을 거대한 전시장으로 바꾸며, 디자인과 산업, 관광을 결합한 브랜드 도시로 성장했다. 전시장 밖 골목과 상점, 카페, 공공공간까지 디자인을 확산시켜 방문객이 도심을 걸으며 도시랜드를 ‘체험’하게 했다. 부산도 WDC를 계기로 북항, 서면, 남포, 영도 등 주요 생활·문화 거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 축제로 작동하는 ‘경험되는 부산’을 구현할 수 있다.

앞서 WDO 실사단은 지난 6월 도모헌, 부산근현대역사관, 북항, 영도 봉산마을, 부산역, 동서대학교, F1963, 블루라인파크, 부산디자인진흥원 등을 방문해 시민참여형 도시재생, 디자인교육, 공공공간 혁신 사례를 확인했다. 특히 주거·환경·안전·건강 등 8개 분야의 시민참여형 공공디자인 진단 지표를 개발해 문제를 맞춤형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국제사회에서도 모범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성과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2007년 부산디자인센터 개원을 시작으로, 국제디자인어워드 개최, 총괄건축가·총괄디자이너 위촉, 디자인전문조례 제정, 시민공감디자인단 운영 등 정책과 제도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2024년에는 광역지자체 최초로 미래디자인본부를 출범시키고, ‘품격 있는 디자인 도시 부산’을 위한 빅 디자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국내외 디자인 거장 초청, 국제 콘퍼런스, 글로벌 디자인페어 계획 등도 이어지며 부산은 이미 WDC에 걸맞은 도시 역량을 구축해 왔다.

시는 앞으로 세계디자인거리 축제, 세계 디자인 체험 주간, 디자인 정책 콘퍼런스 등 WDC 의무 프로그램과 로컬 특화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

WDC는 단순한 국제행사 유치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서 드높이는 실행 플랫폼이다. 서울은 2010년 WDC 이후 도시브랜드 가치가 약 8900억원 상승했고, 헬싱키와 발렌시아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정책과 시민참여 구조를 도시 운영 저변에 까는 계기가 됐다. 부산 역시 이번 지정을 통해 디자인산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 관광·문화 파급효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부산은 디자인의 가치와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하며 세계 각국의 사례를 연구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해 7월 열린 ‘부산세계도시브랜드포럼(WCBF)’에서도 확인됐다. 국가브랜드 석학 사이먼 안홀트, WDO 회장 토마스 가비, 세계적 디자이너 고든 브루스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해 도시디자인과 브랜드 전략을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박형준 시장은 ‘시민이 행복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WCBF는 2023년에도 열렸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iF’의 우베 크레머링 회장,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디자인 도시로 지정된 일본 고베시의 오하라 가즈노리 부시장이 연단에 섰다. 전문가 세션에서는 전통 문양을 활용한 아이콘 개발로 도시브랜딩에 성공한 포르투갈 포르투시의 이사벨 모레이라 다 실바 소통홍보책임, 역사와 정체성을 반영한 통합 브랜딩 전략을 소개한 싱가포르의 유니스 탄 TSLA 대표, 삶의 질 평가와 도시 매력도 분석을 다룬 머서(Mercer)의 슬래진 파라카틸 글로벌 총책임자가 각국의 도시 브랜딩 전략을 공유했다.

시는 이 포럼을 매년 확대 개최해 WDC와 연계된 국제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세계 도시들과의 교류 속에서 부산의 브랜드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또 세계디자인거리 축제, 세계 디자인 체험 주간, 디자인 정책 콘퍼런스 등 WDC 의무 프로그램과 부산만의 로컬 특화 프로그램을 차례로 선보이며, 도시 전역이 디자인을 경험하는 무대가 되도록 할 방침이다.

박 시장은 14일 “세계디자인수도 선정을 계기로 부산은 글로벌 디자인 허브 도시로 도약할 것”이라며 “디자인은 외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헬싱키처럼 디자인을 시민의 일상 경험에 스며들게 하고, 밀라노처럼 도시 전역에서 디자인 브랜드를 체험하게 만드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