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 압력에 각 국가가 따로 대응하면 각개격파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관계가 비슷한 일본 같은 국가와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재계의 한·일 경제연대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긍정 추진하는 것은 이런 이 대통령 의중과 맞닿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에까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무역 청구서에 대표적 피해국인 한국과 일본이 뭉쳐서 대응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CPTPP 가입 논의가 한·일 양국이 미국과 진행할 통상 협상 2라운드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세부 사안을 다룰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상 과정에서 CPTPP가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불리한 무역 조건을 추가 제시할 경우 CPTPP 수출 시장이 변수로 작용해 좀 더 공정한 협상을 끌어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병원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은 12일 통화에서 “한·일은 대미 무역 의존도가 강하다는 게 약점인 나라”라며 “CPTPP 가입을 통해 양국이 무역 기회를 넓힐 수 있다면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일종의 레버리지로 작용해 무조건 약한 자세로 임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한·일 밀착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과의 일대일 협상을 탈피해 본격적인 수출 다변화 길을 공동 모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다.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이 ‘허브 앤드 포크스’(중심축과 바큇살) 전략으로 무역 질서를 바꿔나가는 상황에서 마치 다른 보험을 들려는 것처럼 CPTPP를 추진하는 것을 미국은 좋지 않게 볼 수 있다”며 “지금은 협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허정 한국국제통상학회장도 “중장기적으로 CPTPP를 추구하더라도 일단 한·일 정상회담에선 ‘미래지향적 무역·경제 공동체’ 같은 추상적 표현을 내세우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CPTPP보다 정치적 의미가 덜하고 농수산업 개방 등 민감한 논의를 뺄 수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선 미국이 배제된 소다자 통상 질서 참여의 실효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