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은 한·일 양국 모두 경제적·정치적으로 ‘윈-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발 뉴노멀 통상 질서에 맞대응하고,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종 가입까지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 CPTPP 가입으로 한·일 모두 경제적인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허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은 12일 통화에서 “CPTPP는 (미국이 민감해하는) 중국이 빠져 있는 통상 질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며 “미국으로의 수출이 막힌 한·일이 대체 소비 시장을 창출해 미국에서 본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일본에서 소재나 기계를 들여와 중간재나 소비재로 판매하기에 공급망 측면의 시너지가 날 수 있다”며 “자동차와 같은 소비재 시장에서도 한·일 양국 간 비관세 장벽을 낮춘다면 미국의 관세로 촉발된 수출 감소세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1일 발표한 ‘2010년대 이후 무역구조 변화와 경제안보에 대한 함의’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대미 수출 비중은 2012년 대비 8.0% 포인트 늘었다. 특히 자동차 및 부품의 경우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CPTPP 가입은 정치적인 면에서도 양국 정상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부정적 대일 인식을 경제적 성과를 앞세워 설득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또 경제 위기 속 불확실한 산업계의 활로를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리더십을 드러낼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역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과도한 투자 액수 등으로 어수선했던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을 자국 주도의 통상 질서로 끌어들이는 것 자체를 무역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농수산물 시장 개방 문제를 넘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CPTPP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 영향권 농수산물 개방 압박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11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만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수입 규제 철폐를 강력히 요청했다. 한국은 현재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 수산물 등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문재인·윤석열정부에서도 CPTPP 참여 의사를 타진했지만 농어민 반발이 거셌던 데다 과거사 문제로 관계가 경색돼 성사되지 못했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한국에 수출을 많이 했던 멍게 등 수산업이 괴사한 상태”라며 “문재인정부 때도 농수산물 수입 금지 해제를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후쿠시마 원전 폐수 방류를 맹렬히 비판한 바 있어 양국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