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일대일 무역 협상으로 관세 장벽을 높이는 ‘트럼프 라운드’ 압박 속에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일이 소다자주의적 통상 질서를 강화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보고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정부가 CPTPP 가입 추진을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PTPP가 주목받는 건 미국이 동시다발적 양자 통상협정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통상 질서를 보호무역주의로 재편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한국처럼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는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기업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됐다. 정부는 CPTPP 가입을 통한 무역 확대로 통상 파고를 낮추고, 산업 체질 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CPTPP는 미·중 두 강대국이 배제된 일본 중심의 소다자주의 통상 체제다. 관세 철폐를 넘어 디지털, 지식재산, 환경, 노동 등 무역 전반에서 투명성 기준이나 개방 정도(최대 96%)를 높게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캐나다·호주·뉴질랜드·멕시코·칠레·페루·말레이시아·베트남·싱가포르·브루나이·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다수 국가가 미국으로부터 직접적인 통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은 아·태 지역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에 일본과 함께 가입한 상태다. 그러나 RCEP는 무역 개방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IPEF는 관세 혜택이 따로 없는 공급망 협력 중심 질서란 점에서 CPTPP와는 차이가 있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RCEP의 무역 자유화율은 70~80%에 불과하지만 CPTPP의 경우 90% 이상은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가입국과의 무역 개방 효과를 더 크게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CPTPP에 참여한다면 노동·서비스·지식재산권 등에 설정된 높은 기준에 맞춤으로써 한국 산업의 체질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오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이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관세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경제·외교·안보 패키지 딜에 나선다. 이달 중에는 한·일 정상회담도 추진되고 있어 CPTPP 가입에 대한 전향적 결과물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이재명정부 들어 한·일 관계는 선순환에 접어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나 “국제통상 환경이나 국제관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가까운, 보완적 관계에 있는 한·일이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