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트럼프의 위헌적 수출세

입력 2025-08-13 00:40

미국 헌법은 수출세를 금지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핵물질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은 제한하고 있지만, 일반 상품 수출에 세금을 부과한 적은 없다. 다만, 반도체는 군사적·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1950년대부터 수출 통제 품목에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에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통제개혁법이 제정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도 이 기조는 이어졌다.

H20은 엔비디아가 수출금지 가이드라인을 피해 만든 인공지능(AI) GPU용 반도체다.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인 블랙웰 B200에 비해 H20의 추론 역량은 20분의 1 수준에 머물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H20조차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TSMC의 4나노급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고사양으로 중국의 AI 발전을 촉진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미국 기업이 반도체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 중국이 자체 개발한 반도체로 대체할 것이고, 미국은 전략적 우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방침을 뒤집고 H20의 대중 수출을 허용했다. 단, 수출액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는 조건을 붙였다. 미국의 또 다른 반도체 회사 AMD도 같은 조건으로 중국 수출 허가를 받았다. 15%는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수입품에 부과하고 있는 보편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치만으로 36억~43억 달러(5조~6조원)의 세수 증가를 기대하게 됐다.

당장 미국 내에서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국가 안보를 돈으로 거래한다는 비난부터 위헌적인 수출세 도입을 무효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기업의 팔목을 비틀어 이익을 챙기는 국가자본주의를 흉내 내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도 맥을 같이 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관행과 금기조차 거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점점 더 사나워지고 있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