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게임, 질병인가 미래인가

입력 2025-08-13 00:38

‘페이커’ 이상혁은 e스포츠의 마이클 조던 같은 존재다. 그가 팀 T1을 이끌고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LoL(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결승에서 중국팀을 꺾자 e스포츠 팬들은 대회 최초 5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한국과 함께 e스포츠 양대 강국으로 꼽히는 중국에서조차 페이커를 ‘난세에 하늘이 내린 기재로 패왕의 상을 타고났다’거나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절대 최강자’로 부르곤 한다. 페이커를 향해 “우리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바다의 끝에는 하늘이 벽이 되고, 산이 꼭대기에 이르면 내가 곧 봉우리가 된다. 그에겐 한계가 없다”고 감탄한 중국 해설진의 모습은 밈이 돼 퍼지기도 했다.

페이커는 영웅 대접을 받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터넷 게임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보건 당국은 인터넷 게임을 마약과 도박, 알코올 등과 함께 4대 중독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운영 및 현황’을 보면 인터넷 게임은 중독 관리 대상이며 센터를 통해 조기 발견하고 상담 및 치료를 받아 사회복귀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한창이다. ‘게임=질병’의 도식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게임 과몰입(Gaming Disorder)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ICD-11)에 포함하면서 본격화됐다. 우리 통계청은 오는 10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10) 초안을 발표할 계획인데, ICD를 국제 표준으로 간주해온 관행에 비춰 게임 질병코드가 등재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게임=질병’에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0년부터 5년간 아동·청소년 924명, 성인 701명을 추적한 결과 WHO 기준상 게임으로 인해 12개월 이상 삶의 통제력 상실, 부정적 영향 지속 등이 나타나는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게임보다 유튜브가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와이즈앱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 조사를 보면 20세 미만에선 유튜브가 사용시간 기준 게임 앱을 10배 이상 압도하며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 치료용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까지 승인했으니 어떻게 게임이 질병이냐는 것이다. 경제 논리로 따져 봐도 게임을 질병이 아닌 문화예술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은 83억9400만 달러의 게임을 수출하며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글로벌 4강을 차지했다. 이는 음악과 출판, 영화 등 11개 콘텐츠산업 전체 수출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치다. 콘텐츠진흥원은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2년간 약 8조8000억 원의 손실과 8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인터넷 게임에 긍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에 과도하게 노출된 청소년은 충동조절장애나 주의력 결핍, 학습능력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중독으로만 보고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부모와 학교, 업계가 함께 건강한 이용 습관을 만드는 등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페이커 경기를 보며 국경을 넘어 열광하던 중국 팬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눈에는 페이커가 경탄과 부러움의 대상이지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다. 게임을 마약과 나란히 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여는 문화예술로 볼 것인가. 우리는 지금 K콘텐츠 강국으로 가는 갈림길에 서 있다.

김상기 콘텐츠랩 플랫폼전략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