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코스피 5000 애드벌룬 띄우고 바람 빼고

입력 2025-08-13 00:50

집권 초 증시 '이재명 랠리'
지배구조 개혁 등 상법 개정
통한 체질 개선 기대감 반영

코스피 지수 5000은 획기적
증시 대책 총동원해도
달성될까 말까 미지수인데

양도세 대주주 기준 높이면
상법 개정 따른 효과마저
무력화할 부작용 우려돼

숫자는 매혹적이다. 특히 권력을 쥔 정치인들에게는 경제정책의 비전이자 성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렇다고 그 숫자들에 가려진 속살까지 건강하리란 보장은 없다. 억지로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 중국이 내세운 ‘연 7% 성장률’ 타깃은 세계의 부러움을 샀지만, 결국 부채 폭증과 부동산 거품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역대 한국 정부도 474, 747 등 장밋빛 목표를 내걸었지만, 그 뒤에는 가계부채 1200조원, 청년 체감실업률 20%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코스피 5000’ 공약도 숫자로만 보면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분위기와 경제 체질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이룰 수 있는 목표치다. 물론, 작전 종목처럼 운 좋게 코스피 5000을 찍을 수는 있겠지만, 이 대통령이 그런 일시적 거품이나 한탕주의를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 말마따나 부동산 투기자금을 ‘생산적’인 증시로 흐르게 하려면 주식시장 상승세가 지속성을 보인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미국 증시가 장기 상승곡선을 그리며 최고가 랠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 엔비디아 같은 혁신 기업들이 끊임없이 탄생해 GM GE 등 기존 기업과 경쟁하면서 그 성과가 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굴뚝산업 시대에 등장한 굴지의 대기업들이 2세, 3세로 대를 이어가며 여전히 국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주가 부양은 뒷전이고 지배구조 유지에 급급하다. 스타트업의 성장 사다리는 여전히 가파르고, 규제와 자금 부족,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가 창업 의지를 꺾는다. 환자를 외면하고 병원을 뛰쳐나갔던 전공의와 의대생 불패 신화가 이어지는 비극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가 ‘기득권 보호’에 더 익숙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데는 서툴다는 걸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산업 생태계가 세대교체를 거부하면, 유망한 인재들은 안정적인 직장이나 전문직 시험에 몰리고, 모험과 창업은 위험한 선택으로 남는다. 이 악순환 속에 서울대 10개를 만들어봐야 경제 양극화만 심화할 뿐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이재명 랠리’를 보인 이유는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보다는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권 강화 등을 출발점으로 이런 한국 경제 고질병을 고쳐보겠다는 의지를 보인데 따른 반응이었다. 그런데 정작 코스피 5000을 들고나온 장본인인 이재명정부가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방안을 내세워 찬물을 끼얹는 이해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투자자들 눈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겠다는 건 ‘부자 증세’ 틀에 갇힌 운동권식 조세정책으로 증시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비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장 투자자들의 동요도 문제지만 이 조치가 상법 개정 효과마저 무력화시키는 촌극이 연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50억~10억원 규모의 ‘대주주’(?)들이 세금을 피하려 연말에 주식 매도에 나서면 연초 주주총회 등에서 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주권행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선엽 AWF 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번 조치는 기업의 지배주주만 이득을 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대기업에서 대주주 기준 강화 로비를 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있을 정도라고 안타까워한다.

논란 끝에 더불어민주당이 50억원 기준 유지 입장으로 선회해 정부에 이를 전달했고 정부도 시장 추이를 지켜 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나든 당정이 이런 논란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코스피 5000 공약에 애초 진정성이 담겨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대주주 기준을 유지하겠다는 민주당이 8월 임시국회에서는 파급력이 더 큰 노란봉투법 처리 방침을 굽히지 않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얻은 성과를 스스로 반감시키고,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순된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

코스피 5000은 우호적 증시 정책을 총동원해도 달성할까 말까 한 수치다. 그럼에도 여권 핵심부가 주식시장을 부유층 전유물이나 도박판으로 보는 선입견에 갇혀있다면 국민들만 지치게 만드는 사막의 신기루로 남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코스피 5000 터치를 업적으로 남기길 원한다면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통해 시장의 신뢰부터 쌓는게 우선 순위일 듯 싶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