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첫째 주 서울은 ‘프리즈 위크(Frieze Week)’으로 선포되며 미술 행사로 도시 전체가 예술로 물든다. 세계 2대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지난 2022년 서울에 진출해 만든 ‘프리즈 서울’이 내달 3∼6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도 30개국 120개 이상 갤러리가 참여한다. 같은 기간 한국화랑협회가 운영하는 토종 국제 아트페어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 7일까지)도 함께 열린다.
특히 프리즈 서울은 가고시안, 하우즈앤워스, 데이비드즈워너 등 세계 최정상 갤러리들이 참여함으로써 A급 미술장터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프랜시스 모리 영국 테이트모던 전 관장, 마이클 고반 미국 LA카운티미술관 관장, 스위스 출신 스타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 저명한 세계 미술계 인사들이 꼭 찾는 아시아의 빅 미술 이벤트가 됐다. 이 때문에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기간 코엑스에서의 공용어는 영어가 된다. 올해 4회째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프리즈 서울 패트릭 리(56) 대표를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서촌에 소재한 프리즈 서울 홍보대행사 매그 피알 앤 이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변호사 출신으로 안다. 어떻게 아트페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 의사인 아버지가 음악·건축·미술 등 문화에 관심이 많으셔서 어릴 때부터 저를 미술관에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그 영향으로 저도 로스쿨을 다닐 때도 전시를 관람하러 다니고 미술에 관한 글을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제 꿈은 음악가, 미술가, 갤러리스트 세 가지였다. 기타는 좀 치지만 음악엔 재능이 없고, 미술가 역시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갤러리스트는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증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던 그는 미술에 대한 열망을 식히기 힘들었다. 2006년 사촌의 소개로 한국의 박원재 대표가 이끄는 ‘강소 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의 파트너로 참여하며 미술 유통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06년의 일이다. 한국으로 건너와 전도유망한 신진작가 발굴과 해외 소개에 힘쓰며 13년간 이곳에서 일했다. 이어 메이저인 갤러리현대로 이직해 이사로 재직하며 2019년 미국 뉴욕에 ‘갤러리현대 쇼룸’ 개관을 이끌었다. 아트 바젤 홍콩, 프리즈 서울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프리즈 서울이 창설되며 대표를 맡게 됐다.
-3회째 이어진 행사와 달리 올해 4회째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 혹은 차별화되는 전략이 있나.
“프리즈 서울을 아시아의 강력한 미술 중심지로 떠오르는 서울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문화적 앵커’로 생각하고 싶다. 특히 올해는 전체 참가 갤러리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 기반 갤러리로, 아시아와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전례 없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현대뿐 아니라 근현대 미술의 목소리를 글로벌 관객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은 큰 보람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 갤러리의 비중이 크게 확대돼 전체 참가 갤러리의 35%가 서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2023년 비중인 26% 대비 상승한 것이다. 프리즈에 참여하는 한국 갤러리 수도 2022년 12곳, 2023년 18곳, 2024년 23곳 이어 올해는 30곳으로 늘었다. 이는 한국 미술과 한국 갤러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뚜렷하게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올해 한국 갤러리 비중이 높아진 것은 블럼앤포, 페레스 프로젝트 등 해외 갤러리가 참여하지 못한 데 따라 그 빈 자리를 메웠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참여하지 못한 갤러리의 경우 각 갤러리 별 전략에 따라 독립적 결정을 한 것으로, 이는 프리즈 서울의 구조나 성과와 별개의 사안이다. 갤러리들은 각자의 물류, 재정, 작가 스케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뉴욕의 경우 지난 1년 사이 20여 곳의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 이 가운데는 78년 전통의 말버러 갤러리 등 중견 화랑 7곳이 포함돼 있다. 또 2021년 서울에 진출한 베를린 기반 쾨닉갤러리도 2025년 1월 마지막 전시 이후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역시 베를린 기반 페레스 프로젝트도 본사 파산 여파로 서울 지점이 지난 5월 폐점했다.
-1회 행사 때는 600억원이 넘는 피카소 작품 등 미술관급 마스터피스가 줄줄이 나와 이슈몰이를 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초고가 미술관급 작품이 사라지는 등 가격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아트페어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이 나온다. 가격대는 갤러리들이 선택한다. 그들은 스마트하다. 갤러리들은 아시아 전체에서 온 컬렉터를 의식하고, 가져왔을 때 판매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아트페어는 미술관이 아니지 않느냐.”
-이번 페어에서는 기존의 갤러리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새롭게 갤러리들이 합류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 컬렉터들이 아시아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질까.
“프리즈 서울은 코리안 페어가 아니고 아시안 페어다. 우리는 아주 큰 아시아 허브를 서울에 마련했다. 갤러리들은 프리즈 서울에 자신들의 전속 작가를 프로모션하고 대중에게 알리려 온다. 여기에 오면 전 세계 컬렉터, 비평가, 미술관 관계자 등 큰 관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의 창설은 프리즈 본사 측이 대만이나 도쿄, 홍콩이 아닌 서울을 아시아 미술 거점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다. 아시아 다른 도시에 비해 서울이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
“100%, 100% 매력이 있다. 서울은 ‘인크레더블’, ‘언빌리버블’(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한 도시다. 이보다 더 많이 뮤지엄, 비영리기관을 갖고 있고, 문학· 음악· 공예· 영화 등 문화 전반의 인프라를 갖춘 도시가 있는가. 한국은 아주 핫한 곳이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프리즈 위크 동안 삼청동 한남동 등 특정 지역에 밀집 지역의 갤러리들이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여는 ‘삼청 나이트’ ‘한남 나이트’ 등은 프리즈 서울을 미래의 컬렉터들인 MZ세대까지 끌어들이는 축제의 장으로 확장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프리즈 서울이 처음 열릴 때는 갤러리들이 ‘우리가 왜 늦게까지 문을 열어야 해?’ 라면서 낯설어했다고 한다. 리 대표는 “첫 아트페어 개막 2주 전까지 반신반의하는 갤러리들이 적지 않았다”며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힘들었던 에피소드의 하나로 꼽았다.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아트선재 등 국공립 기관과 메이저 사립미술관들이 중요성을 알고 잘 이끌어줘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