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18) 도요타에서 오사카로… 다시 한번 하나님께 순종

입력 2025-08-13 03:08
고정희 선교사 남편 이성로 목사가 2018년 일본 오사카 이쿠노 조선학교 재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선교사 제공

오사카에서 돌아오자마자 교회에 사임 의사를 전했다.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왜 굳이 힘든 길을 찾아가려고 하느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문득 일본에 처음 올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제 겨우 사례비 받는 음악목사 부부로 살게 됐는데 꼭 그래야만 하느냐’며 다시 생각하길 권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의 믿음을 쓰시는 상황은 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정리하는데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사카에 가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갈 수 있느냐.’ 다행히 이번엔 잘 곳이 있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 한결 괜찮았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기꺼이 나를 드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 번의 순종을 통해 다음의 순종으로 다시 이끄시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다시 순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방을 하나 얻어 자취하도록 했다. 딸은 한국 한동대로 진학할 예정이라 가기 전까지 당분간 친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5년간의 도요타 삶을 마무리하고 우리 부부만 오사카로 왔다.

2015년 12월 8일 아침 일찍 이삿짐을 트럭에 실어 보냈다. 남편 이성로 목사와 나는 기차로 오사카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전철을 타 본 적이 없었다. 오사카는 큰 도시다 보니 전철을 타고 집을 찾아가는 게 어려웠다. 수 갈래로 나뉜 전철 플랫폼 위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이마 도코니 이키마스카(지금 어디로 가시나요).”

집 주소가 적힌 쪽지를 보여줬더니 갑자기 북한식 억양의 한국어로 물었다. “혹시 나고야 도요타에서 이사 오시는 이성로 목사님, 고정희 사모님이신가요.”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걸까.’

“제가 그곳을 잘 압니다. 그곳에 있는 조선학교 졸업생입니다. 함께 가자요.” 재일조선인이었다. 조선학교를 사랑하는 목사 부부가 오사카로 간다는 소식을 재일조선인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 역에서 헤매고 있던 우리 부부 대화를 듣고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오사카에 계신 조선인 여러분, 도요타시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사랑해 주셨던 이성로 목사님 부부가 12월 8일 오사카로 이사를 갑니다. 우리 아이들과 동포들을 위해서 가는 것이니 많이들 도와주십시오.’ 도요타에서 교제했던 손상자씨가 올린 글이었다.

이 일로 일본 전역에 흩어져 사는 재일조선인들이 한 가족처럼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됐다. 이들을 좋아해도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두려우랴. 강하고 담대하자. 하나님 여호와가 나와 함께 가신다.’ 날마다 자신을 다지는 외침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