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할 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유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처음’은 낯섦이 주는 설렘과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반반씩 섞여 있다. 알 수 없어 막연히 기대하고 알지 못해 망설여지지만, 이런 감정이 번갈아 가며 용기를 북돋운다. 반면 ‘다시’는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또 걷겠다는 각오가 먼저다. 그 길 위에 놓였던 우여곡절, 실망, 주변의 평가와 귀갓길의 고단함까지도 속속들이 알기에 설렘보다는 책임이, 기대보다는 부담이 앞선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같은 어려움을 또 한 번 감수하겠다는 결심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설령 그 모든 경험을 배움으로 삼아 주저 없이 나아가려 해도 야박한 현실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경쟁에 길든 사회는 노력보다 성과를 먼저 묻고 서둘러 성패를 가른다. 다시 내딛는 발걸음마저 ‘미련’이라 치부한다. 그런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또다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지간한 용기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박수갈채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드문 세상에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온전히 껴안겠다는 강단은 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그들이 용기 내는 ‘다시’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 자기 자신을 향한 신뢰이자 사랑이겠지. 혹은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며 용감하게 세상으로 뛰어드는 투지일지도.
그래서 생각한다. 삶이 주어지는 날까지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때로는 무모해 보일지언정 ‘한 번 더 해보자’는 작은 목소리를 따라 우리는 삶의 결을 조금씩 바꿔왔으니까. 오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이찬혁의 ‘파노라마’를 추가했다. 그는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를 잘도 짓는다. 유쾌하게 따라 부르며 용기를 내야지.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