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농부’ 만드는 이상한 친환경… 정부, 해법 찾을까

입력 2025-08-12 00:06 수정 2025-08-12 00:06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먹거리연대 등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농민을 농부에게! 장기 임차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임차 농부를 유령 농부로 만들지 말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친환경 농업직불금 지급과 관련해 지주(땅 주인)가 임차농을 쫓아내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농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유령 농부’ 문제가 해결될지 주목된다.

친환경 농업은 임차농 비중이 70~80%로 추산된다. 땅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현행 농지법에 따라 친환경 임차농의 상당수는 농지 소유자와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못한 채 농사를 짓고 있다. 정부가 농가에 주는 직불금도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 아닌 땅 주인이 받아가는 일이 잦았다.

특히 2021년 LH 사태(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땅 투기 사건) 이후 정부가 직불금 부정 수령 등 농지 단속을 강화하면서 땅 주인이 임차농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기도 여주에서 23년째 친환경 농사를 짓는 김동환(69)씨는 11일 통화에서 “2~3년 공들여 땅을 가꾸면 지주가 땅을 회수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는 친환경 농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현장은 ‘눈치 농사’ ‘유령 농부’가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임차농 문제는 다른 농업보다 친환경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농지 대다수가 화학비료를 쓴 관행 농지인 데다 ‘돈은 안 되고 힘만 드는’ 친환경 농업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농지를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게 농민 측 입장이다.


지주와 임차농 간 임차 계약이 불분명한 부분도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가 지난해 7월 친환경 농민 50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농업 직불금을 받았다’는 임차농 비율은 37.3%에 그쳤다.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했다’는 임차농도 27.9%로 조사됐다. 계약서를 쓰지 못한 이유로는 ‘지주가 원하지 않아서’(78.0%)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관계자는 “친환경 농민 대다수는 자본이 부족한 영세농”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기는커녕 구두 통보로 쫓겨나는 걸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임차농 문제는 정부 직불금과 맞물려 있다. 땅 주인은 양도소득세 감면 요건(8년 자경)을 채우기 위해 임차농에게 땅을 빌려주고, 본인 명의로 농업경영체를 등록해 운영하는 것이 암묵적 관행이었다. 그런데 친환경 농업은 직불금 수령자(지주)와 친환경 농업인증 취득자(임차농)가 서로 다른 것이 문제가 됐다. 정부가 이를 직불금 부정 수령으로 규정하자 지주가 임차농에게 친환경인증 취소를 요구하거나 아예 퇴거를 요청하는 일이 급증했다. 2020년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가(무농약)는 3만5499가구였지만 지난해엔 2만4381가구로 31.3% 쪼그라들었다.

친환경 농가가 고사 위기에 몰리자 정부도 임차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화 절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살림 등 친환경 농업 생산자·소비자 단체와 만나 임차농 문제를 다룰 TF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농지 임대차 제도 개선 및 직불금 지급 요건, 지주의 양도세 감면 기준 등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농지 보유·경작의 기본 원칙과 함께 관련 조세 제도 등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해 난관이 이어질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관계기관 및 친환경 단체, 전문가 등과 함께 협의체를 꾸리고 농가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