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에서 인사권 남용 의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2022년 7월 총경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은 상명하복식 조직 체계를 갖춘 경찰 조직에서 블랙리스트 논란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반복되는 인사 보복을 막으려면 정치 외풍에 취약한 경찰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인물에 대해 인사나 업무에서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 논란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제기됐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문재인정부의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협조하지 않거나 정권 성향에 맞지 않는 인물들에게 인사 보복이 가해졌다는 의혹이 나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11일 “정권이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가 인사권 행사”라며 “경찰에 대해서도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통제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도 “예전부터 공직사회의 승진이나 인사에 정치권의 개입이 비일비재했다”며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줄을 잘 대야 한다는 분위기는 아직도 만연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고위직 승진 문턱이 높은 경찰 조직 특성상 인사 불이익은 경찰관 개인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경찰 인력은 13만여명에 달하지만 고위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경무관 이상은 121명(0.09%)에 불과하다. 일선 경찰서장을 맡는 총경을 포함해도 0.6%(808명)에 불과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의 첨탑형 인사 구조는 정치적 외풍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인사 문제는 조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총경회의에 참석했던 A총경은 “2023년 상반기 인사 이후 정권에서 시키는 것만 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B총경도 “조직 내 현안에 대해 논의조차 못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보복 인사’가 법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행정안전부가 당시 경찰국을 통해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점이 입증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공무원법상 총경의 전보 등은 경찰청장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처음 형법상 블랙리스트의 문제를 연구한 논문을 쓴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사를 통해 인사권 행사가 경찰공무원법 등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인사권자인 경찰청장이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더 윗선에서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직권남용교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실이나 행안부가 인사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어느 정도 확인된다는 전제에선 직권남용뿐 아니라 공무집행방해죄도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경회의 참석자였던 이은애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지난해 논문에서 2023년 상반기 경찰 인사에 대해 권한남용 금지 원칙을 무시한 ‘위법한 행정 행위’라고 지적했다. 총경회의 참석자들을 전문 분야와 무관한 보직으로 전보시키고, 경정급 직위로 하향 발령낸 것은 인사상 오랜 관례를 벗어난 문책·징계성 인사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김면기 경찰대 교수도 “관례가 수십년간 지속됐다면 ‘행정의 자기구속 원칙’에 따라 사실상 법적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이를 뒤엎은 건 인사권자의 재량을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참석자에 대한 사찰 의혹도 법적으로 문제 될 소지가 있다. 경찰감찰규칙은 소속 공무원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 사찰이 이뤄졌다면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사권자의 재량권이 일부 인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단순히 인사 불이익을 법적 처벌 사유로 삼는다면 조직 운영상 난점이 커진다”며 “총경회의 참석자들은 인사 불이익으로 느낄 수 있지만 조직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사 보복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경찰의 독립성 및 정치적 중립 확보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외부 위원회를 통한 감시 강화, 인사 절차의 투명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교수는 “영국의 독립적 경찰 감시기구(IOPC)와 같이 민간인들로 구성된 외부 위원회를 통해 경찰을 통제한다면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도 “경찰 인사가 밀실에서 결정되지 않도록 시민 안전 중심의 실적에 관한 객관적 지표를 대폭 늘리고 이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청장의 직위를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외부인에게도 경찰청장의 직위를 개방해 부당한 부분에 대해선 의견을 제대로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현 유경진 이찬희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