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회담이나 회의에 장소명이 붙곤 한다. 1919년 1차 대전 종전 뒤 연합국과 독일이 프랑스 파리 인근 궁전에서 체결한 베르사유 조약이 대표적이다. 이집트 카이로 회담(1943년), 구소련 시절 크림반도 얄타 해변의 얄타 회담(1945년 2월), 독일 중부 포츠담 회담(1945년 7월)에선 2차 대전 전후 처리가 논의됐다. 특히 포츠담에선 한국의 독립이 약속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창설을 이끈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 회의(1944), 뉴욕 호텔에서 선진국들의 환율 합의가 도출된 플라자 합의(1985), 유럽연합(EU) 출범과 유로화 도입을 결정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조약(1991)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이후엔 기후 회의가 유독 많았다. 환경 파괴 없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논의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1992), 온실가스 감축을 다룬 일본 교토 의정서(1997), 기후 대응에 전 세계가 동참한 파리 협정(2015) 등이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지 여부가 주목되는 또 다른 중요한 회담이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미 알래스카주에서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위한 회담을 연다.
역사에 기록된 회담은 대부분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한 경우였고, 불발되면 잊혀졌다. 진짜 중요한 합의에는 노벨평화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오슬로 협정(1993)으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 베트남전 종전을 합의한 파리 평화협정(1973)으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레득토 베트남 부수상이 노벨상을 받았다. 회담 당사국은 아니지만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도 국제 분쟁 중재 공로로 2008년 노벨상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노벨상을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알래스카 회담’을 세계사에 뚜렷이 남기고 숙원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가 이번에 종전을 이끌어낸다면 그 다음은 한반도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