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의제 치밀하게 실행… ‘숨은 실세’ 키리옌코

입력 2025-08-11 18:34
사진=TASS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인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세르게이 키리옌코(63·사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 돈바스 지역부터 헤르손주까지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빠르게 장악해 본격적인 ‘러시아화’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키리옌코 부실장이 무자비한 의제를 조용하지만 치밀한 계획으로 이행하는 ‘푸틴의 제1테크노크라트’가 된 순간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러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10일(현지시간) 크렘린궁의 숨은 실세로 등극한 키리옌코를 집중 조명했다. 보리스 옐친이 집권하던 때인 1998년 35세의 나이로 총리에 올랐던 키리옌코는 원래 원전 전문가로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푸틴의 측근인 억만장자 유리 코발추크가 키리옌코를 참모로 추천하면서 푸틴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2021년 키리옌코는 특유의 조용한 방식으로 러시아 최대 소셜미디어 브콘탁테(VK)의 통제권을 확보해 자신의 아들을 최고경영자(CEO)로 내세웠다. 이후 VK는 텔레그램 등 서방산 소셜미디어를 다 누르고 러시아 1등 메신저가 됐다. 러시아 하원은 사실상 VK를 국가 메신저로 만드는 법안까지 가결시켰다.

키리옌코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예술인들에게 애국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했고,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서 ‘가짜 주민투표’를 계획했다.

NYT는 “그의 신념은 ‘규칙이 없는 게임에선 규칙을 만든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라며 “미·러 정상이 알래스카 협상에서 종전을 성사시키면 키리옌코는 이를 승리로 포장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