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에 가까운 A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남편을 먼저 데려가시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아니면 한날한시에 데려가셔도 좋다고. 코로나 이후 외부 출입을 거의 못 하다가 작년부터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갑내기 남편이나 나이 든 자신이 자식들에게 행여라도 짐이 될까 두려워서다.
지난해 여름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남편을 요양병원에 한 달여 입원시킨 적이 있다. 잠도 못 자고 남편을 돌보면서 천근 만근하던 몸은 한결 편해졌는데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려니 외롭고 잡념이 많아져 그것도 못 할 일이었다. 추석 때 집으로 남편을 다시 데려왔다. “당신이 나를 포기한 줄 알았어.” 남편의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눈물을 훔쳤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 같아지고 이기적인 마음도 커지나 보다. 몸이 건강하고 젊었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장도 봐오고 극진히 자신을 챙겨주던 남편이었는데.
나이 60에 남편을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20여년을 홀로 살아온 B씨. 몇 년 전 허리를 다쳤을 때 꼼짝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이대로 하나님 나라에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인정 많고 살뜰하게 챙겨주던 남편이 영영 떠났을 때는 불 꺼진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도 무섭고 허전했지만, 시간이 약인 듯 혼자 살아가는 것도 적응이 됐다. 그래도 젊을 때는 새벽기도도 가고 교회 봉사 일도 많아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80세를 넘고 보니 몸은 둔해지고 바쁜 일도 줄어들면서 가끔 적막감이 밀려온다.
나이 드는 것의 의미
인생은 마라톤이다. 멈출 수도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종착역까지 계속 달려가야만 한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성장하고 눈부시게 푸른 청춘과 장년의 시절을 지나면 낙엽이 떨어지듯 노년을 맞는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졸수(卒壽), 망백(望百)을 넘겨 100세 시대다. 나이 들면서 몸은 느려지고 오래된 부품이 고장 나듯 몸 여기저기가 부석댄다. 그러다가 아기처럼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탱탱하던 피부에 주름이 늘어가고 염색을 해도 삐져나오는 흰머리를 보면서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우울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 드는 것이 결코 두렵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노년을 인간이 현명해지는 시기라고 했다. 노인은 젊은 시절의 열정과 함께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갖추고 있기에 사회에 귀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노년은 그 목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시기라고 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편협해지는 것은 추한 일이다. ‘꼰대’로 노년을 허비할 것인지, ‘멋쟁이’로 품격 있게 황혼을 즐길 것인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노르웨이 출신 작가 린 울만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세월의 흔적이 곧 인생의 깊이가 된다”고 했다. 향수 브랜드로 유명한 코코 샤넬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내겐 지금 이 나이가 있으니까.” 아브라함 헤셀도 “나이 듦은 패배가 아니라 성공이며 형벌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했다.
세계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2010~2012년 갤럽 월드 폴(Poll)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인생 만족도 조사에서 40대에 최저점을 찍고 반등해 나이가 들수록, 특히 50대 이후부터 오히려 행복도가 올라가는 U자 패턴을 보였다. 나이 듦은 슬픔과 상실의 시기, 황혼기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는 것이다. 건강 수명이 더 길어진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60~70대까지도 건강한 장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950년대 평균 수명의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인생 2막은 물론 3막도 가능한 시대다. 은퇴 후 20~3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시간
나이 들어가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려놓고 비우는 연습, 서랍 정리하듯 꼭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사회적 관계로 맺은 인연이나 체면치레로 만나는 불편한 사람은 걸러내는 연습. 나이 들어도 여전히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몸이 느려지는 만큼 마음도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청·장년기가 주변을 넓혀가는 나이라면 노년기는 소모적인 관계는 정리하고 나를 위해 집중하는 시기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정신없이 살다가 아무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되는 죽음은 불행하다.
일본 도쿄 내과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가마타 미노루는 저서 ‘적당히 잊어버려도 좋은 나이입니다’에서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는 60대부터는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을 잊고 나를 옭아매는 족쇄를 잊어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평가는 물론 자기 평가에도 휘둘릴 필요 없다. ‘쉼 없는 노력’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택하라. 지금 내게 없는 것, 잃어버린 것은 놓아버린다. 노후 걱정은 필요 없다. 정답이 아닌 나만의 해답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가마타 미노루는 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장한 ‘파레토 법칙’(20:80법칙)을 예로 들며 나를 나답게 만드는 무언가는 20% 안에 있다며 60 이후에는 정말 중요한 인생의 2할에 집중하라고 권유한다. 화려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거나 값비싼 차의 주인이 되는 것,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것 등 나머지 80%는 놓아주라는 것이다.
일본 노인정신과 전문의 와다 히데키도 ‘80세의 벽’에서 “싫어하는 것을 참지 말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참지 말고 먹으라”고 권한다. 과도한 강박과 욕심이 스스로를 압박하고 무리한 절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삶을 만든다는 것이다.
독일 노인학센터가 40세 이상 중년층과 노년층 5000여명에게 “자신이 몇 살이라고 느끼는가”라고 물었다. 실제 연령보다 어리게 대답한 사람일수록 일상생활 동작의 기능 저하가 더디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실제 젊게 사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
‘나이 듦의 품격’을 쓴 프랭크 커닝햄은 나이 든다는 것은 살아온 기억들을 되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요, 그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에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이 영성훈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이 듦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총을 들여다보는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검불은 걸러내며, 금방 타버리는 불꽃에는 주의하고 우리의 성장을 도와준 것들은 꽉 붙잡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경 속 노년
성경에서 노인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을 넘어 지혜와 경험이 풍부해 젊은 세대를 가르치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축복을 받고 책임지는 이들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았고 후대에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까지 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전달했다.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동시에 성경 속 노인들은 쇠약해진 육신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인간적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술에 취해 벗고 잠든 노아가 그런 경우다.
성경은 노인을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 나이 들어가는 것은 지혜와 경험이 풍부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성경은 묘사한다.
노년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설레는 시간이 돼야 한다. 육체는 힘들고 고단하더라도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어보자. 인생의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그 시간을 감사하며 성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