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로뎀나무 그늘처럼”… 선교사에 영적 안식처 제공

입력 2025-08-12 03:07
‘해외사역자 R&R 캠프’ 참석자들이 지난 6월 강원도 속초 켄싱턴호텔에서 강의를 들은 뒤 토론하고 있다. 아시안미션 제공

윤정호(가명) 선교사 부부는 네팔에서 17년째 해 온 사역을 멈출 위기에 놓였다. 몇 개월 전 아들의 신장이식 수술로 돌입해야 했던 안식년이 그 시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0여년 동안 사용해 온 교회와 훈련센터 부지가 철거 통보를 받았다. 5층 규모의 한국어 학원 운영도 힘들어졌다. 모든 게 무너져내린 듯한 절망 속에서 이들 부부를 위로한 건 지난 6월 선교사지원단체 아시안미션(대표 이상준)을 통해 강원도로 떠난 2박3일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윤 선교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바다 없는 네팔에서 온 우리에게 동해의 아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였고, 값진 회복의 시간이었다”고 감격했다.

성경 속 ‘로뎀나무’가 현실로

1981년 설립된 아시안미션은 국내외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등 사역자를 대상으로 멤버 케어 사역을 펼치고 있다. 멤버 케어는 선교사가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과 사역을 감당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가족과 동료 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중도 탈락 없이 효율적으로 선교를 이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윤 선교사처럼 오랜 사역으로 회복이 필요한 선교사들에게 제공하는 ‘힐링바우처’가 대표적이다. 배경에는 성경적 철학이 있다.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만난 아시안미션 이상준 대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로뎀나무 밑에서 이틀 동안 쉬었다. 떡 두 덩이와 물병 두 병으로 회복해 호렙산까지 걸어간 것처럼 선교사들이 다시 사역할 원동력을 갖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사역자 캠프, 선교관 제공 등의 지원사업도 있다. 지난해에만 선교사 2769 유닛(unit)에게 81억원 규모를 후원했다. 유닛은 선교사 개인이나 가족 전체, 팀 단위 등의 지원 대상 단위를 말한다. 이랜드그룹 호텔·리조트 사업부와 협업으로 설악·평창·광안리 3개 호텔과 켄싱턴리조트 8곳에서 2박 3일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는 힐링바우처는 지난해 258가정이 혜택을 누렸다. 16년간 선교사 4177명이 이용했다. 강정은 아시안미션 과장은 “선교지 상황과 가족 내 심신 건강상태 등을 종합 심사해 가급적 많은 가정을 섬기려고 한다”고 했다.

‘생명 구하는’ 건강검진, 맞춤형 캠프도

멤버 케어 사역을 펼치고 있는 아시안미션 실무진이 지난 7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이상준 대표, 원현경 주임, 강정은 과장. 신석현 포토그래퍼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놓치기 쉬운 것이 건강검진이다. 아시안미션은 이랜드클리닉, 사랑의병원과 협력해 지난해 732명이 건강검진을 받도록 했다. 이랜드클리닉 등이 수십만원에 달하는 기본 검진비를 절반가량 할인 제공하고, 할인된 검진비의 절반을 아시안미션이, 나머지만 선교사가 부담한다. 지금까지 누적 건강검진 지원은 1만4148건에 달한다. 이런 건강검진은 실질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선교단체 한국해외선교회 개척선교회(GMP) 소속 김숙종(가명) 선교사는 이를 통해 지난해 8월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전립선암을 발견했다. 이후 정밀검사에서 3기 판정을 받아 한국에서 병원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갑상샘암을 발견한 뒤 수술받고 완치한 또 다른 선교사도 있다.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한 선교사들이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 머물 공간을 위해 선교관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아시안미션이 직접 운영하는 12곳을 비롯해 지역교회들과 협력해 마련한 선교관 88곳에서 현재까지 102가정이 머물렀다.

선교사 간 네트워크를 통한 쉼과 회복을 위한 ‘사역자 캠프’도 다양하다. 올해로 38회째를 맞는 해외선교사 R&R 캠프를 포함해 국내사역자 R&R 캠프, ‘싱글 리프레쉬 캠프’, 홀로된 사모 패밀리 캠프, 이주민 사역자 포럼 등에 누적 2549명이 참여했다. 강 과장은 “가족의 지지가 없는 싱글 사역자들의 경우 더욱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며 “싱글 리프레쉬 캠프는 선교단체와 캠퍼스단체 소속 2년 이상 전임 싱글 사역자가 같은 기관 소속 사역자들끼리 팀을 구성해 자유 일정으로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한 선교 모델 구축

아시안미션은 2009년부터 매년 평균 선교사 1066유닛에 생활비 지원의 기념으로 정기후원(가족 단위 20만원, 싱글 10만원)을 해왔다. 모든 사역은 이랜드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힐링바우처를 비롯해 이랜드클리닉 할인과 호텔·리조트 객실 무상 제공 등은 멤버 케어 사역의 토대다.

아시안미션은 앞으로 10년 내 2700유닛에게 재정을 지원하기 위해 연간 500억 규모의 후원 인프라 모금을 목표로 세웠다. 이 대표는 “캠프 참여 350가정을 대상으로 지난 6월 말 설문한 결과 97%가 ‘사역을 돌아보고 돌보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고 말했고 ‘사역을 지속하는 동력과 용기를 받았다’(92%)고 답했다”면서 “그동안 선교 현장이 ‘일단 가서 버티는’ 것이었던 것과 달리, 이젠 선교사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역할 수 있도록 예방적 돌봄과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생겼을 때 응급처치하는 것을 넘어 번아웃이 오기 전에 미리 쉼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건강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역할 토대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멤버 케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는 교단과 단체를 초월해 선교사라는 이름 하나로 함께 돌보는 연합 돌봄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기업과 교회, 선교단체가 각자의 강점을 살려 협력하는 모델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