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

입력 2025-08-12 00:38

품격 잃은 대통령 부부의 비극
정권 따라 달라지는 사법 잣대
후진적인 정치 검찰의 고질병

이재명정부도 반면교사 삼아야
편 가르기와 내로남불 사면은
민심 이반 불러 불신 깊게 할 뿐

또 한 편의 막장 정치 드라마가 이제 막 시작인데 첫 장면부터 너무 충격적이다. 법을 너무 잘 아는 검찰총장 출신의 전직 대통령은 특검의 체포영장에 반발해 속옷 차림으로 드러누웠다. 두 번째 체포 시도에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다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강직함과 기개는 어디로 사라지고 공권력을 조롱하고 법을 무시하는 전직 대통령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유독 명품 사랑이 유별난 한국에서 6000만원대 명품 브랜드 목걸이를 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하고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하는 등 16가지 범죄 연루 혐의를 받는 전 영부인은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있다.

자신의 말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최고 권력자를 조종하고 권력을 휘둘렀다. 대통령은 비위를 덮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대한민국 시계를 1980년 암흑의 시대로 되돌렸다. 서슬 퍼런 정권 초 최고 권력자의 충실한 행동대장과 나팔수 노릇을 하던 검찰과 언론은 하이에나가 돼 물어뜯는다. 권력 주변에 모여들었던 불나방들은 새로운 권력을 찾아 옮겨간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대통령과 일가족의 흑역사는 수십년 어렵게 쌓아올린 국격을 떨어뜨렸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K팝의 나라 대한민국이 외신에 비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제발 품격을 지켰으면 한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일부 독재 국가들에서나 있을 법한 부정축재나 뇌물수수 등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모습이라니 부끄럽다.

‘제2의 논두렁 시계’ 같은 망신주기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특검의 무리한 수사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정권 따라 춤을 추는 정치 검찰의 고질병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고 한다면 검찰 수사 결과를 누가 믿겠는가. 4년 전 미래에셋증권 압수수색을 하고도 못 찾았던 김건희 여사 녹취파일을 뒤늦게 찾아내 무혐의로 결론 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전말이 꿰맞춰지는 중이다. 계엄 대통령을 끝까지 감싸며 호위무사로 나섰던 국회의원들도 알고 보니 모두 구린 구석이 있었다. 통일교로부터 거액의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나 공천개입 연루 의원 등은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살생부에 오를 것이 두려웠나 보다. 아직도 “계엄으로 누가 죽었거나 다친 것이 없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입당하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는 야당 대표 후보들도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정권이 바뀐 뒤에도 무탈하게 존경받는 대통령이 거의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상대를 향했던 칼은 언젠가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막강한 이재명정부지만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지금 윤 전 대통령이 겪고 있는 일들이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 정권마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되풀이돼 온 검찰이나 언론 길들이기 시대도 지났다. 특검의 짜맞추기 수사를 통한 정치보복인지,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는 현명한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다.

민심은 무섭다. 정권 초에는 높은 지지율이 영원할 것 같고 허니문이 지속될 것 같지만 한번 잘못하면 여론이 등 돌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편 가르기 정치에 신물 난 20, 30세대들은 제3의 정치지형을 원한다. 그런 열망이 지난 대선에서 표로 드러났다. 무한 경쟁사회로 내몰린 희망이 사라진 세대에겐 여당이나 야당이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일 뿐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버젓이 차명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법사위원장이나 과거 법사위 회의 중 코인 투자, 재개발 딱지 투자 등으로 낙마했다가 정권이 바뀌니 다시 나타나 요직을 꿰찬 인사들이나 도긴개긴이다. 입시비리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기부금 횡령으로 감옥에 갔던 여권 인사들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다. 야당 원내대표가 자기편 사면 대상자 명단을 대통령실에 민원하는 판이니 국민 눈에는 똑같다.

국민의 도덕성에 한참 못 미치고 특권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는 이들이 정치판에 가득하다. 4류 정치를 못 벗어나는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고 장기표 선생이 추진했듯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고 국민 평균소득만 받는 명예직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면 정치 수준도 조금 나아지려나.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