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에틸렌 생산 업체 여천NCC가 부도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 여부를 두고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긴급 자금을 투입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는 막자는 입장이지만, DL그룹은 추가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DL 경영진은 여천NCC를 사실상 ‘밑빠진 독’으로 진단하며 워크아웃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불황에 시름하는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측은 지난달 말 여천NCC 관련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여천NCC는 원료비 정산과 차입금 납입을 위해 오는 21일까지 3100억원가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두 회사는 지난 3월에도 여천NCC에 1000억원씩 총 2000억원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지원했지만, 여천NCC는 누적된 손실과 재무구조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자금 고갈 상태가 됐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사의 나프타분해설비를 통합해 공동 출자한 회사다. 양사가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다. 여천NCC는 한때 1조원대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 등에 밀려 2022년부터 적자 전환했다. 2022년 3477억원, 2023년 2402억원, 지난해 23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화그룹과 DL그룹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긴급회의에 참석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여천NCC의 회생 가능성이 없어 추가 자금 지원도 어렵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3개월 만에 추가 지원을 요청한 만큼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 원인이 무엇인지 경영 상황부터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DL그룹 측은 워크아웃 방안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화 측은 주주사가 각각 1500억원을 지원해 책임 경영 차원에서 자구책을 실행하면 연말까지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말 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자금 대여도 승인한 상태다. 다만 한쪽 주주의 단독 결정으로는 자금 수혈이 불가능하다. 한화그룹은 DL그룹 측의 자금 지원 거부를 두고 ‘모럴 해저드’라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합작 이후 25년 간 2조2000억원의 누적 배당금을 벌어들인 DL 측이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21일 전까지 두 회사가 입장을 좁히지 못해 여천NCC 부도가 현실화할 경우 석화 업계 전반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우려한다. 여천NCC 직원들과 거래처 업체들도 동요하고 있다. 부도 위기가 알려지면서 거래 규모가 큰 업체들을 중심으로 대금 회수 가능성을 문의하는 연락이 이어지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양 사가 협의해 여천NCC의 어려움이 조속히 해결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DL그룹은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DL케미칼 자본 확충 관련 의사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