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중기 저리대출’ 규정 위반 은행에 ‘벌칙 금리’ 부과

입력 2025-08-11 00:24

한국은행이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한 은행에 내년부터 1% 포인트의 ‘벌칙 금리’를 매기기로 했다. 한은에서 저금리로 지원하는 자금이 정책 대상인 중소기업 대신 대기업·부도 업체 등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새로운 제재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10일 한은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4일 개최한 비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은행 금융기관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금중대 규정을 거듭 위반한 은행에 대해 금리를 통한 제재를 신설한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금중대 관련 자료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위·변조를 반복한 금융기관은 최대 6개월간 1% 포인트 이내의 벌칙 금리를 적용받는다.

금중대란 한은이 시중은행에 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해 이를 요건에 맞는 중소기업에 대출해 주도록 하는 제도다.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대출 접근성을 높여주는 ‘정책금융’의 성격을 띤다. 한은은 내년 초까지 연 1.0% 금리로 총 14조원 규모 금중대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부도·폐업 업체나 대기업, 금융·보험업 등 금지 업종에 돈을 빌려주는 ‘규정 위반(위규) 대출’이 속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규정 위반 대출의 연평균 잔액 합계는 2311억5000만원이었다. 이중 부도업체 지원 등 기타 사유로 인한 규정 위반이 1093억6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도상환 보고 지연(418억4000만원), 중소기업 분류 오류(399억8000만원), 폐업업체 지원(399억6000만원) 순으로 규정 위반 규모가 컸다.


한은은 일부 은행의 취약한 전산 인프라와 부실 운영이 이 같은 위반을 양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몇몇 은행의 대출 창구에서 특정 업종·인증 여부 등 금중대의 구체적 요건 충족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출을 승인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16개 은행의 평균 금중대 규정 위반 비율은 0.3%였지만 A은행(1.8%)과 B은행(0.7%)에서 상대적으로 위반이 빈번했다.

그동안 한은은 금중대 규정 위반이 발생할 경우 저금리로 공급한 자금을 회수하고 해당 은행에 배정된 금중대 규모를 줄이는 식의 ‘양적 제재’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내년부터는 과거 지급준비금 부족 사태를 일으킨 은행에 적용했던 벌칙 금리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존 제재만으로는 은행권의 충분한 개선 노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은 관계자는 “(벌칙 금리 도입으로) 은행들도 금중대를 취급하기 위한 인프라와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낄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제재는 내년부터 시행되므로 하반기 은행들과 꾸준히 만나 충실한 준비를 당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