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그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암시하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향후 한·미 정상회담과 그 이후 진행될 실무회담에서 이 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포스트가 9일(현지시간) 보도한 미 정부 내부 문서는 지난 5월 작성된 것으로 한·미 무역협상을 앞두고 미국의 요구사항을 담은 초안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서에는 ‘한국이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과 ‘국방비 증액 및 방위비분담금 인상’이 포함돼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 활동 반경을 중국 억제 등을 위해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킹슬리 윌슨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8일 한·미 간 논의될 ‘동맹 현대화’에 대해 “한반도와 그 너머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도 한·미동맹의 임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읽혔다.
전략적 유연성은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요구한 바 있다. 2006년 발표된 한·미 공동성명에는 “한국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선에서 절충안을 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19년 전 합의를 넘어선 전략적 유연성의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최근 엑스에 “한국은 북한에 맞선 강력한 방어에서 더 주도적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것과 국방 지출 면에서 계속 롤모델이 된다”고 썼다. 미국이 중국 억제에 군사적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한국이 대북 방어 측면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 반영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반대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등의 카드로 압박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수석고문을 지낸 댄 콜드웰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재 약 2만8500명인 주한미군 중 지상 전투병력 대부분을 철수하고 약 1만명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 전력을 즉각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