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외래에서 흔히 만나는 사례가 있다. 다른 병원에서 연골판이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고 관절경 수술까지 받았지만 통증이 계속돼 찾아온 환자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특별히 다친 적도 없는데 무릎이 갑자기 뚝 하고 아프더니 걷기도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MRI를 찍고 연골판 손상 부위를 다듬거나 봉합하는 치료를 고려한다. 하지만 환자의 병력을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연골판이 아니라 몸 전체의 구조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대개 이런 환자는 키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다리 모양이 약간 휘어 있다. 소위 말하는 ‘오다리’다. 이런 상태에서 무릎 안쪽, 특히 내측 반월상 연골판에 지나친 하중이 반복적으로 실리면 연골의 뿌리 부위가 파열된다. MRI 영상만 보고 단순히 찢어졌다는 판단으로 수술해선 회복이 되기 힘들다. 이미 관절 전체 압력 축이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리 엑스레이를 찍고 무게 중심선을 그려보면 이런 환자의 체중이 무릎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집중된다. 무릎 내측 연골에 150%, 심지어 200% 이상의 하중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초자연골이 점차 너덜너덜해지고 결국엔 인공관절 수술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런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예측의학이 발휘하는 힘이다. MRI 한 장으로 현재의 손상을 보는 것뿐 아니라 환자의 체형과 다리의 축, 병력과 생활 습관 등 전체 그림을 보고 ‘이 무릎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먼저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밭의 한 모퉁이에 두더지가 들어온 흔적이 보일 때 지금은 별일이 아니라고 넘기면 결국엔 밭 전체가 망가진다. 하지만 이 시점에 울타리를 치고 손상된 땅을 정비하면 밭 전체를 지킬 수 있다. 예측의학은 바로 이 울타리를 치는 작업이다.
실제 세계적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2013년 콘서트 투어 중 고관절 수술을 받고 공연을 중단했다. MRI 검사로 고관절 내 관절와순이 파열된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은 오랫동안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무시했다. 고통을 견디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더해 섬유근육통 진단까지 받으며 근육과 관절을 중심으로 한 만성적 통증 질환과 싸우게 됐다. 그의 고통의 나날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만성 통증 질환의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미리 통증의 구조적 원인을 예측하고 개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관절의 형태와 부하의 분포, 무대에서의 반복적인 스트레스 및 고강도 퍼포먼스 이후의 회복 지연. 이 모든 걸 조기에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면 관절와순 파열이라는 급성 외상은 물론, 섬유근육통으로 이어지는 전신 통증의 만성화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예측의학이 갖는 임상적·철학적 가치다. 질병이 나타나기 전에 그것을 볼 수 있는 기술이자 병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몸의 미래를 읽고 설계하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
작은 관절 통증 하나가 인공관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와 있다. 무게중심선 분석, 연골 바이오마커 측정, AI 기반의 영상 분석, 체중과 근골격계 구조에 따른 진행 예측 알고리즘이 이런 방법들이다. 이 모든 것은 진단을 넘어 환자의 미래를 설계하는 의학이다.
지금의 통증을 넘어서 앞으로의 관절을 지키는 길. 예측의학은 치료를 위한 정보가 아닌 삶의 질을 지켜내는 통찰 그 자체다. 이 통찰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준 몸을 잘 관리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건 그분의 뜻을 이뤄가는 것이기도 하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