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 드세요” 세심한 시중… 삶의 끝 돌보는 따뜻한 동행

입력 2025-08-11 03:01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오늘날 죽음은 더 이상 노년층만의 과제가 아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거나 임종을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들, 신앙 안에서 삶의 끝을 묵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사회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생애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신앙공동체의 역할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김동규 기자가 지난 7일 경기도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한 환자의 식사를 돕고 있다.

손짓 하나, 내딛는 발걸음마저 고심했다. 환자의 생전 마지막 기억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지난 7일 경기도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회장 김환근 목사)에서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에 처음 참여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봉사자 25명이 둘러앉았다. 봉사의 시작은 경건회였다. 수원기독호스피스회 총무 조사론 목사가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선창했다. 예배 말미엔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저마다 봉사의 자리로 바삐 떠났다.

센터는 1995년 설립 이후 현대 의학마저 손을 놓은 말기 환자를 돌보고 있다. 현재는 17명의 환자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병원이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면, 호스피스 병동은 6개월 이내 사망 가능성이 있거나 연명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의 공간이다. 50여명의 봉사자는 환자들이 복음 안에서 생을 마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지지하는 인생의 마지막 친구와도 같다.

이날은 ‘목욕 봉사’가 진행됐다. 호스피스 봉사는 10주 이론 교육을 거치고 병동에서 환자 돌봄을 관찰한 뒤 임상 실습까지 참여 해야 가능하다.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기자는 병원과 사전에 합의한 뒤 임시 허가를 받아 기도와 청소, 식사 봉사에 참여했다. 다른 봉사는 견학할 수 있었다.

봉사에 앞서 봉사팀장 이순자(64·수원명성교회) 권사가 유의사항을 알려줬다.

“호스피스 봉사는 섣부른 친절보다 세심한 배려가 우선입니다. 봉사자들은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피하고 상처 부위나 민감한 부분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대화 역시 신중해야 합니다. ‘곧 나을 거예요’나 ‘하나님 고쳐주세요’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말 대신 기독교인 환자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전하고, 비신자에게는 담백하게 안부를 묻는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복장은 밝은 색상을 권합니다. 병실 분위기를 가볍게 할 수 있어서죠. 말과 행동 모두 환자의 남은 시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봉사자들이 환자를 만나기 전 함께 경건회에 참여한 모습.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 제공

임종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는 임마누엘실에서는 한 할머니가 임종을 앞둔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 권사는 무릎을 꿇고 “사랑합니다. 평안이 함께하길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기자는 천옥순(가명) 할머니의 식사를 도왔다. 미음 몇 숟가락이 전부였지만 매번 환자의 기호를 살펴야 했다. 혹시나 불편하지는 않았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다섯 숟가락도 드시지 못한 할머니가 “너무 친절하시네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걱정하는 내게 오히려 위로를 전하신 것 같아 뭉클했다.

목욕팀은 기계를 이용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의 머리를 감겨준다. 더운물을 사용하는 욕실은 여름 햇살 아래보다 더 후끈했다. 승강기마저 고장 난 탓에 봉사자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졌다. 2016년부터 봉사하고 있다는 강덕진(71)씨는 “환자를 모시고 이동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도움을 드릴 때 보람을 느낀다”며 “젊은 환자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날 때 마음이 무겁다.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봉사를 마치고 병동을 나서는데 6년 전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던 친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야위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던 기억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병실 한쪽에서 눈물로 기도하던 한 봉사자가 기억에 남았다. 또 누군가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한다는 것의 큰 의미를 새삼 깨달았던 기회였다.

“자원봉사자들은 매주 한 번씩 오세요. 개중엔 오늘 뵌 어르신을 다음 주에 만나지 못하는 분도 계시죠.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한 호스피스 봉사자가 어렴풋이 건넨 말이 귓가에 맴돈다.

수원=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