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픔·고민 화폭에 담았어요

입력 2025-08-11 03:04 수정 2025-08-11 08:25
김정희 작가의 설치 작품인 '그 자연이 내게 말하기' . 김 작가는 흙과 돌, 나뭇가지, 죽은 식물의 뿌리 등을 수집해 완성한 설치 작품을 통해 한때 하나님의 섭리대로 지내온 창조세계의 질서를 되살려냈다.

서울 답십리역 2번 출구 앞 건물 지하, 면적 991.7㎡(약 300평) 규모의 전시장 ‘답십리 아트랩’에선 ‘모든 아름다운 것들 중에 빛나다’는 주제의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23일까지 진행되는 아트미션(회장 양지희)의 올해 정기전으로, 38명의 기독 작가가 세상의 아픔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그림과 설치 미술 등이 전시돼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양지희 회장은 “기독교 예술과 공동체가 지역 사회와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최진희 작가의 작품 광야에 서다

작품 대다수는 기독교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김미옥 작가는 프랑스와 미얀마 등 지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을 화폭에 함께 담아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에 대한 동질감을 표현했고, 양 회장은 윤동주 시인의 ‘눈 오는 지도’에서 영감을 얻어 위안부 등 질곡의 역사에 대한 아픔을 그렸다. 화가 고흐가 사랑한 매춘부를 모티브로 웅크린 채 숨은 여인을 형상화한 조혜경 작가는 세상 곳곳의 사각지대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담담히 드러냈다. 성경 구절을 여러 겹 필사한 추상화를 그린 박혜성 작가는 “작품을 보고 ‘빛이 보인다’고 평가한 승려도 있다. 예술은 종교를 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서성록 안동대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 답십리 아트랩에서 김미옥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희 작가는 흙과 돌, 나뭇가지, 죽은 식물의 뿌리 등을 수집해 완성한 설치 작품을 통해 한때 하나님의 섭리대로 지내온 창조세계의 질서를 되살려냈고, 이영신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시간을 덤불 등으로 수렴한 형상을 통해 이웃과 친구, 가족 등이 주는 따뜻함과 찬란함을 느끼게 했다. 한혜영 작가는 종이배를 탄 어린 아이가 그려진 동화 풍의 작품에서 어딘가로 향해가는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고찰했다. 한 작가는 특히 “암 치료 중인 한 친구를 떠올리며 작업을 했고, 그 친구에게 너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하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고 했다. 예술 공학 박사인 채진숙 세종대 교수는 AI를 활용한 작품을, 그의 동생인 채현숙 작가는 A4용지에 한국어, 헬라어, 영어, 중국어로 성경 구절과 주기도문을 적어 촘촘히 접어 배치한 작품을 출품했다.
이영신 작가의 작품 '꿈꾸는 여인의 비망록 2025'

아트미션 고문이자 미술평론가인 서성록 안동대 명예교수는 “아트미션 회원들이 함께한 독서 토론한 신학자인 리처드 마우의 ‘그 분은 모든 것 가운데서 빛난다’는 데서 이번 전시 주제를 가져왔다”며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이며 그런 기대감이 출품작 한 점 한 점에 실려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종교화시키는 것을 지향하고 상처 난 세상과 함께 아파하는 다정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 마지막 날인 23일엔 ‘기독교 예술과 공동체의 회복’ 주제의 포럼이 진행된다.
서성록 안동대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 답십리 아트랩에서 양지희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아트미션은 현재 경기도 안산의 한 다문화센터에서 작품 전시를 하면서 그곳의 아이들과 공동 작업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매년 11월에 열리는 청년 기독교 작가 대상 교육 캠프는 올해 4회째 맞는다.
예술 공학 박사인 채진숙 작가가 AI를 활용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