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K-AI’ 탈락이 흠 되지 말아야

입력 2025-08-11 00:35

정부는 지난주 국가대표 인공지능(AI)을 개발할 정예팀 5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우리 독자 기술로 AI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선도 AI 대비 95% 이상 성능을 가진 한국형 모델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로써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첫발을 뗐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20일부터 한 달 동안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공모를 진행했다. 여기에 15개 컨소시엄이 도전장을 냈다. 과기부는 1차로 제출 서류에 대한 서면 평가를 진행해 10개 팀을 추렸다. 이후 발표 평가를 거쳐 네이버클라우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NC AI, LG AI연구원 등 다섯 곳을 선발했다. 이들 기업은 앞으로 2년간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를 전폭적으로 지원받는다. 이에 더해 ‘K-AI 기업’ ‘K-AI 모델’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쓸 수 있다. 과기부는 선발 명단만 발표했지만 애초에 공모한 팀 15곳을 전부 공개했기 때문에 단계별로 어느 기업 또는 스타트업이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방식이다.

탈락 업체들 사이에선 “정부가 공모에서 떨어진 업체를 이렇게 대놓고 알리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어느 기업이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겠느냐는 얘기다. 물론 정부는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 과제 실행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인 만큼 선발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국가대표 AI라는 타이틀을 놓친 사실만으로 회사 이미지 실추,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향후 사업을 추진하거나 투자를 유치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할 만하다. 정부는 탈락한 팀에도 평가 의견을 제공해 발전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지만 이미 기술 경쟁력이 뒤처진 업체로 낙인찍혔다는 절망감이 퍼져 있다.

AI 같은 첨단산업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선도 업체가 시장을 선점하는 승자독식의 속성을 갖고 있다. 개별 기업들의 경쟁을 넘어 범국가적 총력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메타 등 빅테크 4곳을 포함해 올해 정부와 민간의 AI 전체 투자액이 4709억 달러(약 652조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AI 산업 규모를 10조 위안(약 1900조원) 이상으로 확대해 세계 최대의 AI 혁신센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한국도 올해 AI 예산으로 1조8000억원을 편성하는 등 AI 투자에 집중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들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이 글로벌 빅테크와 벌이는 경쟁을 ‘총과 대포의 경쟁’에 비유한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에 선발된 5개 정예팀은 2027년 최종 2개 팀에 들 때까지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게 된다. 정부는 올해 말 추가 평가를 통해 지원 대상을 4팀으로 줄이고 6개월마다 심사를 거쳐 한 팀씩 떨어뜨릴 계획이다. 또 국민들이 직접 AI 모델을 체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대국민 콘테스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탈락한 팀 중에는 의료 영상, 임상 데이터 등 의료·바이오 특화 데이터 활용을 앞세운 스타트업도 있다. 이들이 가진 기술력과 인프라가 묻히지 않고 한국형 AI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정부 역할이다. 의료 데이터 분석에 강점을 가진 기업은 의료 AI 시장을 선도하고, 금융 데이터에 특화된 기업은 핀테크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수 있다. 지금은 ‘모두의 AI’를 만들기 위해 모두의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다.

권지혜 산업1부 차장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