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고지혈증 등 대사 이상을 동반하는 지방간질환(옛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이 근래 소아청소년층에서도 크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10~18세 지방간질환 유병률은 최근 10년간 8%에서 12%로 증가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의 지방간질환 진단은 쉽지 않다. 가장 확실한 간생검은 간 조직을 떼어 내는 검사로 소아에게 적용하기 어렵고 초음파나 MRI는 비용 부담이 크다. 일반적인 간 효소 수치(ALT, AST)만으로는 대사 관련 질환을 진단하기에 제한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의료진이 소아청소년에게 맞는 현실적인 진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채현욱·송경철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권유진 교수팀은 성인 지방간 환자 진단을 위해 개발된 ‘지방간 지수(FLI)’와 ‘간지질증 지수(HSI)’를 소아청소년에게 적용 가능한지 확인하고 최적의 진단 기준값을 산출했다. 연구는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등록된 2017~2020년 미국 청소년 1158명, 강남·용인세브란스병원의 2007~2023년 소아청소년 환자 203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FLI와 HSI의 ‘곡선하면적’이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에서 각각 0.91, 0.90이었고 강남과 용인세브란스병원 데이터에서는 둘 다 0.93으로 나타났다. 곡선하면적은 질병을 얼마나 정확하게 가려내는지 나타내는 수치다.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질병 유무를 잘 구분해 냄을 뜻한다. 또 FLI가 20 미만일 경우 대사 이상 지방간질환 위험이 낮았으며 50 이상일 경우 높게 나타났다. HSI는 30 미만일 경우 질환 위험이 낮았고 40 이상일 경우 높아졌다.
이번에 제시된 진단 기준은 간수치(ALT)가 정상인 경우에도 유효했다. 이는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소아청소년에게도 대사 이상 지방간질환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송경철 교수는 11일 “FLI와 HSI는 일상에서 쉽게 수집할 수 있다. 1차 의료기관이나 학교 건강검진 등에서 쉽고 빠르게 산출할 수 있어 최근 급증하는 소아청소년 대사 질환 관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