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환자 15% ‘거세 저항’ 단계 진행
표적 치료제 ‘올라파립’ 나왔지만
4년째 비급여… 환자 전액 부담해야
“건보 확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표적 치료제 ‘올라파립’ 나왔지만
4년째 비급여… 환자 전액 부담해야
“건보 확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고령의 전립선암 환자들이 부담스러운 항암 치료 전에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옵션이 있는데,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한 달 약값만 600만원이 넘어요. 그러다 보니 치료를 포기하거나 몇 달 복용하다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립선암환우건강증진협회 맹찬영(69·사진) 회장은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가 대부분 겪게 되는 이른바 '거세 저항 전립선암(mCRPC)'의 치료 현실을 이렇게 말했다. 맹 회장은 1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특히 65세 이상 환자들은 퇴직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감사하게도 제약사에서 일정 부분 환급을 해 주고 있지만 결국 치료비 부담을 가족과 함께 져야 한다는 점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는 일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2022년 신규 발생 전립선암 환자 2만754명의 79%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맹 회장은 "의사들도 급여가 되지 않는 비싼 치료제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권유하기 부담스러워 한다"고 토로했다.
10~15%는 호르몬 치료 안 들어
전립선암은 남성 호르몬을 영양분 삼아 발생하고 자란다. 전체 전립선암 환자의 3분의 2는 암이 전립선에 머무는 국소 단계에 진단되는데, 이처럼 초기라면 수술이나 방사선, 호르몬 치료만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5년 생존율이 100%에 가깝다. 하지만 3분의 1은 뼈·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고 이 경우 생존율은 절반 아래로 뚝 떨어진다.
전이된 전립선암은 남성 호르몬을 박탈·억제하는 약물치료나 항암 치료를 시도한다. 흔히 선호되는 호르몬 치료는 처음엔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이다가 1~2년 지나면서 재발해 호르몬제가 더 이상 듣지 않는 ‘거세 저항성’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2년을 채 살지 못한다(전체 생존 기간 중앙값은 21.2개월). 국내 연구에 따르면 전체 전립선암 환자의 10~15%가 이런 mCRPC 단계로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맹 회장 자신도 2013년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했으나 1년 만에 재발해 간헐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다.
전립선암이 mCRPC 단계로 진행된 경우 치료 옵션은 매우 제한적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표준 치료는 항암요법과 차세대 호르몬제(NHA)에 국한된다. 탁산계의 독한 항암제와 아비라테론, 엔잘루타마이드 등 NHA를 번갈아 사용하는 게 일반적 치료 패턴이다. 항암요법은 구토, 탈모 등 부작용이 심해 고령의 환자들이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새 호르몬제는 독성 항암제와 작용 기전이 일부 동일해 mCRPC 치료 시 교차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맹 회장은 “치료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이처럼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환자와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한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고령의 mCRPC 환자들은 1차 치료 후 2·3차 후속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근래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새로운 기전의 표적 치료제가 난치성 전립선암 치료에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올라파립(린파자)’이라는 약제가 2021년 차세대 호르몬제와 병용 요법으로 mCRPC 환자의 1차 치료부터 허가돼 임상 현장에서 도입된 것.
맹 회장은 “올라파립을 신 호르몬제와 병용한 후 검진 때마다 암의 진행 속도가 확연히 느려진 것을 확인했다는 환자들이 주변에 있다”면서 “의사들도 해당 표적 치료제가 환자들의 생존 기간을 의미 있게 연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어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4년 가까이 건보 문턱 못 넘어
하지만 올라파립은 허가된 지 4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건보 문턱을 넘지 못해 연간 약 7000만원의 약값을 환자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mCRPC 치료의 올라파립 병용 치료에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맹 회장은 “세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인데, 올라파립의 급여화가 늦어지면서 환자들이 치료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또 “전립선암은 단순히 고령의 남성 환자 개개인이 겪는 질환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시급한 보건의료 과제”라며 “환자의 상당수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은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사회 전반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립선암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삶의 의지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도록 비급여 치료제의 건보 확대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도 치료 접근성 확대의 시급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하유신 교수는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치료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경제적 이유로 사용을 망설이는 현실은 의료진 입장에서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치료제 급여화를 비롯한 제도적 개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2023년 1월 기준 국내 전립선암 생존 환자는 14만7000여명으로 위암, 대장암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