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레이스, 너마저… 기후위기 막을 ‘은행 협의체’ 탈퇴 잇따라

입력 2025-08-12 00:13
게티이미지뱅크

주요 글로벌 은행이 세계 금융권의 기후 위기 대응 협의체 ‘NZBA’(Net-Zero Banking Alliance)에서 발을 빼고 있다. 세계가 폭염과 폭우로 신음하고 있음에도 금융권의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계 대형 은행 바클레이스는 최근 NZBA를 탈퇴했다. NZBA는 2050년까지 지구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파리 기후 협약을 금융권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 주도로 2021년 생긴 협의체다. 2050년 세계 모든 은행의 대출·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탄소 배출량을 없애는 것이 NZBA의 목표다. 이 협의체에 가입한 은행은 1년 6개월 안에 2030년 중간 목표치와 2050년 장기 목표치를 세워 알린 뒤 대출·투자에 따른 온실가스 간접 배출량을 매년 공개해야 한다.

NZBA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세계 은행권 총자산의 41%를 차지해 금융권 내 대표적인 기후 협의체로 꼽혔다. 국내에서도 KB금융지주·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NH농협금융·JB금융·IBK기업은행이 가입했다. 그러나 2024년 말 골드만삭스·웰스파고·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시작으로 올해 1월 씨티그룹·모건스탠리·JP모건체이스, 3월 미쓰이스미토모·미즈호·노무라, 7월 HSBC에 이어 바클레이스까지 미국·영국·일본 국적 주요 글로벌 은행의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 이로 인해 NZBA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대비 20% 이상 급감한 상황이다.


주요 글로벌 은행이 NZBA를 줄지어 탈퇴하는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에너지 정책 기조 변화다. 지난해 말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미국 행정부는 파리 기후 협약에서 이탈하고 석유·가스 투자를 장려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 노선을 180도 틀었다. 주요 글로벌 은행들은 기후 관련 규제와 실무 간 괴리가 크다며 볼멘소리를 해왔는데 미국의 에너지 정책이 바뀌자 ‘각국의 정책 상황이 달라져 조율하기 어렵다’며 NZBA 탈퇴를 감행한 것이다. 은행권의 대출·투자 포트폴리오 전환이 실제 탈탄소로 즉각 이어지지 않는 점과 NZBA 참여 자체가 수익성을 저해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NZBA가 흔들리면서 한국 금융사들도 눈치를 보고 있다. NZBA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이 단체에 가입함으로써 얻었던 ‘국제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기준을 준수한다’는 명분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이 경우 ESG를 중시하는 세계 기관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기존 정책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등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NZBA를 탈퇴할 계획은 아직 없다”면서도 “다른 주요 글로벌 은행의 이탈이 더 많아져 협의체가 붕괴하거나 다른 한국 금융사가 발을 빼지는 않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사가 주도권을 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그동안 한국 금융사는 세계 금융권의 기후 위기 대응 논의에서 한발 비켜서 있었는데 지금 한국은 새 정부 출범 후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하는 등 미국과 상황이 정반대”라면서 “주요 글로벌 은행이 NZBA를 떠나는 것을 계기로 발언권을 키우겠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