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의 별과 우주] 우주경쟁보다 중요한 ‘비행사의 생환’… 아폴로 시대 교훈

입력 2025-08-12 00:34

1950년대부터 이어진 미·소련 경쟁
서방 세계 과학연구·교육 혁신 선도
아폴로 13호 짐 러벌 지난 7일 작고
그가 짊어졌던 귀환 미션 기억해야

1960년대를 이야기할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미션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과 구소련이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시대가 1960년대였다. 양국은 치열한 군사 경쟁을 하고 있었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이념 경쟁도 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우주탐사 경쟁도 한 축을 차지했다. 이 시기를 우주 경쟁의 시대, 더 나아가서는 우주 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 만큼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양 진영의 국운을 걸고 치열하게 진행됐다.

소련은 1957년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렸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이었다. 우주 경쟁에서 소련이 미국에 앞서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보다 우주 경쟁에서 앞섰다고 생각하던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소련 입장에서 이 사건은 영광의 순간이었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쪽에서는 이 사건을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 미국이 흩어져 있던 우주 관련 기관을 통합해서 지금의 NASA를 만든 것도 스푸트니크 쇼크 때문이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과학교육을 혁신하는 작업도 했다고 한다. 현재 서방 세계에서 이뤄지는 과학교육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 이때 확립된 것이다. 미국에 천문학과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당시 미국에 있던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박사의 말에 따르면 대학에 천문학과는 생겼는데 강의를 진행할 천문학자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 박사도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소련은 ‘라이카’라는 개를 태운 우주선을 우주 공간으로 보내면서 우주 경쟁에서 미국을 저만치 따돌렸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라는 영광과 동물을 우주 공간으로 보냈다는 타이틀을 소련에 뺏긴 미국은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는 꿈을 꿨다. 하지만 최초로 인간을 우주 공간으로 보낸 것도 소련이었다. 1961년 소련 국적의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간 인간이 되었다. 미국의 충격은 커져만 갔다. 소련은 연이어 최초의 여성 우주인을 우주 공간으로 보내는 쾌거를 이뤘다. 1960년대 초반 우주 전쟁에서 소련은 연전연승이었다.

55년 전인 1970년 우주공간에서 산소탱크가 폭발해 ‘우주 미아’가 될 뻔했던 아폴로 13호를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킨 짐 러벌 선장의 초상화. 그는 지난 7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NASA 홈페이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전을 노린 미국의 계획은 아폴로 미션이었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라이스대에서 연설하면서 아폴로 미션을 언급했다. 1960년대가 가기 전 미국은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작업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해내겠다는 연설을 했다. 미국의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폴로 미션의 시작이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아폴로 미션은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아폴로 미션은 시작하자마자 불행이 닥쳤다. 아폴로 1호 실험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캡슐 속에 있던 우주비행사들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아폴로 미션은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폴로 미션을 더 밀어붙였다. 소련도 유인 달탐사 계획을 진행했다. 루나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유인 달탐사에서도 소련은 앞서갔다. 루나 2호는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충돌)한 인류의 인공물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루나 3호는 최초로 달 뒷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루나 9호는 달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우주탐사선이 됐다. 우주 경쟁에서 소련은 굳건한 우위를 차지한 채 우주 전쟁은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아폴로 1호의 참사를 이겨 내고 아폴로 미션을 이어갔다. 아폴로 7호는 최초의 TV 생방송을 실현시켰다. 아폴로 7호부터 10호까지 달 궤도 유인 탐사가 이어졌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 착륙선의 문이 열리고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었다. 이어서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으로 나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 인간이 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유인 달탐사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1960년대를 이어오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전쟁은 미국의 최종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후 우주탐사의 중심축은 미국으로 급격하게 쏠리게 됐다. 우주 경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소련은 유인 달탐사 경쟁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유인 화성탐사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나라도 화성에 사람을 보내지는 못했다.

아폴로 미션은 1972년 말 아폴로 17호가 달에 가면서 마무리됐다. 그후 아무도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없다. 지금은 NASA가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미션이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아르테미스 미션의 여성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아폴로 미션의 꽃은 아폴로 11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사람이 간 것이니 당연히 그런 찬사를 들어 마땅하다. 그런데 아폴로 13호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유인 우주탐사 미션의 목표는 어떤 천체에 사람이 가 성공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의 궁극적 목표는 우주비행사가 어떤 천체에 가 임무를 수행하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까지 포함된다. 유인 우주탐사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 착륙에는 실패했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서 지구로 돌아온 아폴로 13호야말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미션이라고 하겠다. 그런 아폴로 13호의 귀환을 책임졌던 우주비행사 짐 러벌이 지난 7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제 아폴로 미션의 문이 닫히고 있다.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