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관세 협상 작동 배경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안보 의존
규칙에 기반한 시대 가고 주먹에 의한 세계질서 시작돼
자주국방 강화와 외교 다양화 한국이 가야할 명확한 대비책
규칙에 기반한 시대 가고 주먹에 의한 세계질서 시작돼
자주국방 강화와 외교 다양화 한국이 가야할 명확한 대비책
최근 일본, 유럽연합(EU), 한국은 순차적으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은 25~30%의 관세 적용을 예고한 상태였다. 최종적으로 관세율은 15%에서 합의됐다. 다만 추가적인 투자금액을 약속했다.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60조원), EU는 6000억 달러(약 830조원),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80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이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는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약 72%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물론 대출과 보증이 포함됐고,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이긴 하다.
일본, EU, 한국의 관세 협상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문서’로 정리되지 않았다. 원래 관세 협상은 미국에서도 국회 비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비준을 받지 않는 행정명령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본이 합의했던 15% 관세율이 실제로는 ‘기존 관세에 추가로’ 붙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정도다. 예컨대 미국은 일본산 의류에 관세 4%를 부과했다. 여기에 15% 관세가 ‘추가돼’ 합계 19% 관세율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다. 상호 무관세가 적용됐다. 이번 합의로 한국산 제품은 미국에서 15% 관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나 미국산 제품은 한국에서 0% 관세율이 적용된다. 즉 미국에 유리하고, 한국에 불리한 불공정한 적용이다.
관세 협상이 모두 마무리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의 경우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을 경우’ 100%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슨 일이 더 벌어질지 예단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는 2가지다. 첫째, 이처럼 불공정한 협상은 왜 관철되고 있는 것인가. 이유는 한국, 일본, EU 모두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안보 의존을 무기로 자국의 경제적 이권을 챙기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다.
둘째, 미국의 불공정한 ‘자국 우선주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1기 때 중국에 적용했던 높은 관세율을 낮추지 않았다. 중국 견제와 미국 투자 압박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가 일치했다. 초당파적인 뉴노멀로 봐야 하는 이유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질서와 이후의 세계질서는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이전은 ‘주먹에 의한’ 세계질서였다. 제국주의·식민지 시대였다. ‘아편 수입’을 금지했다는 이유로 침략을 당하던 시대다.
이후 세계질서는 미국이 주도해 만들었는데, ‘규칙 기반’ 세계질서였다. 부분적으로 ‘미국도 규칙의 지배를 받는’ 국제질서였다. 미국이 타국에 군사적 개입을 할 때 유엔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와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등 국제기구의 절차적 중요성은 같은 맥락이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세계질서의 근본적 재편이다. 변화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2차대전 이전의 세계질서로 복귀하는 것이다. 다시 ‘주먹에 의한’ 국제질서로 바뀌는 중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 견제를 협력하면’ 경제성장을 지원해줬다.
일본, 독일,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국제정치학적 배경이다. 미국의 정책 방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안보를 도와줬으니, 돈 내놔~’가 됐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경제적 지위 하락의 결과물이다.
관세 협상의 진짜 교훈은 2가지다. 첫째,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다시 ‘주먹에 의한’ 국제질서가 시작됐다. 둘째, 미국에 ‘안보를 지나치게 의존하면’ 더 부당한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대응 방향은 명확하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되 한 축으로는 자주국방 강화를, 다른 한 축으로는 다양한 외교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미국의 협조,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 재처리 시설 등을 추진해야 한다. 자주국방 강화는 경제적 약탈을 대비하는 전제조건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